김선영의 신세대 SF연작소설(러브타임머신)
과거와 미래를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어떠한 일
들이 벌어질까? 역사의 뒤안길에 감추어져 있는 과거의 진실을 파헤쳐
볼 수 있고, 또 제3의 쿠데타나 제3차 세계대전 같은 끔찍한 대란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요즘 한창인 ‘역사 바로 세
우기’도 어렵지 않게 일구어 낼 수 있을 것이다.
4월호부터 H·W독자들과 만나게 될 소설은 제목이 암시하듯. 타임
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의 세계로 날아가 당대의 미녀들을 만나고 사
랑을 나누는 복받은 남자들의 이야기이다. 춘향, 심청, 황진이, 논개,
옹녀 등의 한반도 역대 미녀들에서 부터 양귀비, 서시, 포사, 반금련
등의 중국 미녀. 그리고 클레오파트라나 마릴린 먼로 등의 서양 미녀
들까지 1996년의 ‘나’(독자 자신으로 생각하고 읽으면 더욱 흥미로
울 것이다)를 만나서 섹스 파트너가 되어 준다. 또 미래의 미스코리아
나 슈퍼모델과 만나 보는 건 어떨까?작가의 역사 뒤지기와 상상력을
통하여 꼭 만나 보고 사랑하고 싶은 역사 속의 미녀나 미래의 미녀가
있다면 독자엽서를 이용해 주문하는 것도 좋을 듯.
대리 배설은 정신건강에 유익한 것이다.
김선영(소설가)
제 목 : 김선영의 신세대 SF연작소설 - 러브 타임머신:제1화 옹녀 죽이기
러브 타임머신 여행사의 방 한 칸.
"음… 에이즈도 걸리지 않았고 간도 양호하군. 물론 매독도 없고 임
질도 없고 비임균성 요도염도 없고… 다른 병들도 없고… 그럼 차림
표를 골라 보시오."
신체검사 결과가 '양호'로 나오자 오만불 박사가 말한다.
차림표는 참으로 다양하다. 춘향, 심청, 황진이, 논개, 옹녀 등의 한
반도 역대 미녀들에서 양귀비, 서시, 포사, 반금련 등의 중국 미녀, 그
리고 클레오파트라나 마릴린 몬로 등의 서양 미녀들까지.
나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무려 1천만원이라는 거액 요금을 지불
하고 역사 저편으로 가는 여행이 아닌가. 그동안 돈을 모으느라고 여
간 고생을 한 것이 아니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러브 타임머신 여행을
꼭 한 번 해보기 위해서 부모님을 속였다. 휴학을 해 놓고서 등록금을
꼬박꼬박 모은 것이다. 게다가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군대?
그건 이미 다녀왔다. 나는 현역 대학생이 아니라 예비역 대학생이었
다.
"좋습니다. 옹녀로 하겠습니다."
"호, 대단한 자신이군. 익히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옹녀는 보통 여
자가 아닌데… 그래도 괜찮겠소?"
"워낙에 빼어난 미인이란 말씀이죠?"
"미인이야 다 미인이지 뭐. 다만 묘한 징크스를 가지고 있어요. 그
럼 이걸 한번 볼까요?"
오만불 박사는 손에 들고 있던 리모콘의 버튼 하나를 누른다. 그러
자 아무것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벽에서 갑자기 영상이 나오기 시작
한다.
살갗이 간지러울 정도로 화창한 봄날이다. 한 소녀가 진달래꽃이 만
발한 오솔길을 따라 걷고 있다. 버드나무 가지처럼 가느다랗고 유연한
허리가 봄바람에 흐늘거리는데, 사뿐사뿐 진달래향을 타고 걷는 모습
이란 등꽃의 우아한 아름다움으로도 비견할 수 없을 지경이다. 누덕누
덕 기워 입은 가난한 옷차림으로 보아서 상것일 듯 싶은데, 속곳만 까
놓고 본다면 그렇게만 보이지 않을 성도 싶다.
소녀는 조금 더 걸어, 해맑은 시냇물이 잠시 고였다가 흐르는 여울
에, 이를테면 신(神)의 조화로 이루어 놓았을 법한 천연의 욕탕 앞에
다다른다. 주위엔 온통 짙푸른 녹음이 우거져 있어, 사람들 눈에 좀체
로 띄지 않는 그런 장소다. 이름이 따로 없어서 그렇지, 양귀비가 놀
았다는 화청지(華淸池)가 무어 부러우랴.
소녀는 달덩이같이 교교한 얼굴을 들어 사방을 휘둘러보더니, 속눈
썹 긴 커다란 눈을 가볍게 찡그려 눈웃음을 친다. 아직은 덜 성숙한
몸매로 보아서 이팔 청춘 나이에도 못 이르렀을 듯 한데, 그놈의 앙증
맞기 짝이 없는 눈웃음만큼은 이팔 청춘보다도 두어 해는 족히 더 먹
어 보인다.
소녀는 여울가에 거북이처럼 엎드려 있는 납작한 반석(盤石) 위로
올라가, 자그마한 손을 들어 옷고름에 손을 댄다. 흰 저고리에 검정치
마,다음으로 속바지를 벗어내리니, 아직 채 여물지 않은 소녀의 알몸
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허, 놀랍도다."
우거진 수풀 사이에선가 들릴 듯 말 듯한 사내의 감탄이 새어나온
듯 싶다. 소녀는 흠칫 놀라 양손으로 가슴과 아랫도리를 나누어 가리
고, 재빨리 고개를 휘둘러 주위를 살핀다. 사람의 그림자는 커녕 다람
쥐새끼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는다.
"기럼 기렇디, 누가 있을라구. 여지껏 한 번도 없었는데."
소녀는 작은 소리로 뇌까리며 천천히 여울 속으로 몸을 담근다.
"아, 차거!"
꾀꼬리가 잠시 지저귄 듯, 고운 목소리가 사방의 나무숲에 부딪쳐
은은히 메아리친다.
소녀는 어깨까지 물 속에 담근 채 하나하나 몸을 씻어가기 시작한
다. 양손을 바가지 모양으로 만들어 얼굴에 물을 축이고,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쳐들어 목을 적시고, 이어서 아직 한 치는 더 자라야 할 젖
무덤으로 손을 가져간다. 애당초엔 없던 것이 점점 자라서 표주박 크
기만큼이나 되고, 오디처럼 짙은 색을 더해 가는 봉우리를 보니, 소녀
스스로의 생각으로도 기이하기만 하다. 손을 한참 아래쪽으로 가져가
니 제법 자란 거웃이 만져지는데, 왜 유독 그곳만 하고 생각하니 더욱
기이하다.
소녀는 야릇한 기분에 젖어들며 한동안 목욕에 열중한다.
"이제 그만 가야 할까 보네."
찬물에 너무 오래 몸을 담그고 있었던 탓으로, 소녀는 이윽고 오한
을 느끼기 시작한다. 소녀는 더 지체하지 않고 몸을 일으켜 여울 속에
서 나온다.
구름 속에서 잠시 비어져 나온 일광(日光)에 소녀의 복숭아빛 알몸
이 불현듯 휘번뜩인다.
"어허, 정말 놀랍기 짝이 없도다."
소녀는 다시금 사내의 감탄을 몸으로 느꼈으나 애써 도리질한다. 소
녀는 알몸일 때 의례건 그런 환청에 휩싸여 깜짝 놀라곤 하던 습관이
있다. 하지만 이제 많이 익숙해졌고, 또 많이 대담해졌다.
소녀는 사뿐사뿐 걸어 다시 반석 위로 올라간다. 반석 위에 알몸으
로 앉은 채 일광에 그대로 몸을 말린다. 이윽고 몸이 다 마르자 벗어
놓았던 옷가지를 하나하나 주워 입기 시작한다. 옷을 다 입은 소녀는
반석 위에서 내려와 나무숲을 헤치고 다시 오솔길로 접어든다.
소녀는 마을을 향해 진달래꽃이 만발한 사잇길을 빠져가다가, 누군
가가 등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흠칫 놀란다.
"아이야, 나 좀 보렴."
뒤돌아보니, 얼굴에 꼬질꼬질 때가 낀 늙은 거지중이 기우듬히 서
있다. 빨아도 빨아도 때가 빠질 것 같지 않은 누더기옷 차림에, 손때
가 절어 반질반질 윤기마저 감도는 육환장(六環杖)을 짚은 던적스런
차림새가, 말이 중이지 거렁뱅이 그 이상이다.
소녀는 늙은 중의 초라한 차림새를 신기한 듯 물끄러미 쳐다본다.
"어허, 영락없는 작약 이상이야."
"작약을 달라십네까?"
"허허, 작약보다 아름답다는 뜻이야. 게 좀 앉아 보렴."
소녀는 저 늙은 중이 뭘 할까 궁금해지는 까닭에, 순순히 길가에 쭈
그리고 앉는다.
"어허, 영락없는 모란 이상이야."
"이번엔 모란을 달라십네까?"
"허허, 모란보다 아름답다는 뜻이지. 걸어가는 모습은 익히 보았지
만, 영락없는 등꽃 이상이야. 아, 아깝구만, 상것인 것이."
"상것인 게 무어 어떻든가요?"
소녀는 중을 향해 물으며 살짝 얼굴을 찡그린다. 중의 눈이 순간 놀
란다.
"어허, 찡그린 형상이 더욱 아름답도다. 춘추 시대 절대 미녀 서시
라고 해도, 고대 주나라의 절대 미녀 포사라고 해도, 아니 그 미색의
장점만 합친다 해도, 감히 이 아이의 미색엔 역부족이니, 작약과 모란
과 등꽃을 합쳐 기르면 이 모양이 날까 모르겠네."
늙은 중은 중국의 유명한 미녀 서시와 포사를 소녀에 견주어 보며
말을 잇는다.
"보면 볼수록 아까운 미색이라, 내 너의 신운(神運)의 길흉을 점해
줄 터이니, 어디, 생년월시를 정확히 대보렴."
늙은 중이 소녀의 사주를 듣고 점을 쳐보니, 젊어 과부가 될 모진
신기(神氣)다.
"오호, 청상살이 겹겹이 쌓여 있으니, 근래에 보기드문 모진 흉운이
로다. 내 이르건대, 소녀의 몸가짐을 바로 하여, 열녀불갱이부(烈女不
更二夫)의 윤리를 지키는 것만이 많은 인명의 손실을 줄이는 것이 될
터이니, 욕정에 눈이 어두워 뭇 남정네들을 유혹하길 삼가해야 하는
법. 그러니, 첫 서방 외에 다른 남정네 보기를 돌같이 해야 하느니라."
소녀는 거지중 주제꼴에 헛소리마저 하는군, 하고 속으로 비웃으며,
그래도 마땅치 않아 겉으로 콧방귀를 흥 하고 뀌곤 오솔길을 총총걸
음으로 내려간다.
"오호, 등꽃은 등꽃인데 흉이 낀 등꽃이라, 말 한 마디에 발걸음이
저리도 경망해지는구나. 어쨌거나, 저 아이 얼굴엔 이제 곧 도화(桃花)
가 피겠네."
오만불 박사가 다시 리모콘의 버튼 하나를 누르자 벽에 비쳐 나오
던 화면이 사라진다.
"정말 예쁘군요. 이 방안에 향기가 온통 배어 있는 느낌이에요. 저
여자가 그럼…"
"그렇소. 늙은 거지중은 세상을 잊고 떠돌아다니는 땡초인데,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천하 절색의 소녀인즉, 바로 옹녀의 어릴 적 모습
이오. 몰래카메라로 저 모습을 찍느라고 타임머신 촬영팀들이 고생깨
나 했지."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요?"
"이제부터가 시작이오. 그러니 다시 한 번 화면을 보시오."
오만불 박사가 또다시 리모콘의 버튼을 누른다. 다시 화면이 나온
다.
옹녀 나이 15세에 이르르니, 그 미색이 너무 현란하여 보는 이가 자
지러질 지경이다. 서시와 포사도 따를 수 없을 정도라는 그녀의 미색
을 요모조모 뜯어보면, 수식할 온갖 미사여구가 모자랄 지경이다.
이제 몸매도 절정이어서, 봄바람을 타고 흐늘거리는 잘록한 허리는
현기증마저 나게 할 지경이다.
옹녀가 여느때처럼 여울 속에 한참을 몸 담그고 나와, 반석 위에서
발가벗은 채 일광에 몸을 말리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의 따뜻한 손이
등뒤에서 다가와 그녀의 눈을 가려 버린다. 옹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면
서도 침착하게 입을 열어 묻는다.
"누, 누구십네까?"
그 손은 여실히 사내의 손인데, 그 사내는 점잖은 목소리로 입을 연
다.
"한양 가는 선비인데, 그대의 자태에 넋이 나가 이리 되었구나."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선비는 옹녀를 번쩍 들어 반석 위에서 내려
선다. 옹녀가 눈을 돌려 선비를 보니,점잖게 갓 쓰고 도포 입은 차림
이 필경 양반의 품새인데, 미목(眉目)이 수려하여 미남의 절정인지라,
부끄럽고 겁 나는 것만 빼면 그 남정네의 품이 과히 싫지만은 않다.
하지만 아무리 상것이라도 여자는 여자인 법, 옹녀는 선비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끙끙거리며 악다구를 쓴다.
"이거 노시라요, 노시라요!"
그런 옹녀가 보면 볼수록 귀여워지는지, 선비는 퍽이나 흡족한 미소
를 지으며 괜한 협박을 가한다.
"너 이년, 상것인 주제에 감히 앙탈을 부리다니, 애써 물볼기를 맞
으려 하느냐?"
옹녀는 순간 눈물이 핑 돈다. 상것이 무엇이며 양반이 무엇인지, 똥
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한 집안의 여식으로 태어나 매일을 하루같이
배를 주리다가, 몹쓸 병에 부모를 한꺼번에 여의고 말았다. 옹녀의 꼴
을 딱히 여긴 주막집 주모가 데려다 길러 부엌일이나 거들게 되었으
며, 어쩌다 빠져나와 여울가에서 혼자만의 나른한 행복에 젖곤 하던
옹녀였는데, 상것이라 하여 짐승 취급을 받으니 열 다섯 옹녀의 마음
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것이다.
눈물을 본 선비는 정색하여 옹녀를 말로써 어루만진다.
"허허, 낭자. 미안하오. 내, 괜히 실없이 해본 소리니 괘념치 말길
…"
그러기 무섭게 선비는 옹녀를 풀밭에 누이고 그 위로 서슴없이 올
라간다. 경험없는 옹녀는 이게 무슨 사람 죽이는 짓인가 하여 사지를
버둥거리며 발악했으나, 선비의 억센 힘에 당해낼 재간이 없는지라,
이윽고 기묘한 통증을 느끼며 한쪽으로 자지러진다.
얼마 후 깨어난 옹녀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옷을 챙기는 사이, 선비
는 다가와 옹녀의 들썩이는 어깨를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한다.
"내 본디 한양 사람으로, 이곳 양서(兩西)땅에서 벼슬하는 부친을
따라와 머물렀는데, 이번에 한양 가 장원급제하는 건 따놓은 당상이
니, 내 너를 어여삐 여겨 훗날 데리러 오겠네. 측실(側室)로 받아들이
겠다는 뜻이지. 상것에게 시집 가 평생 일만 하며 사느니, 이 몸의 측
실이 백번 나을 것이다. 비록 측실이라고 하나, 너 같은 상것에겐 필
경 과분한 일, 딴짓 말고 굴뚝처럼 이 몸을 기다릴 것이야."
선비는 가던 길을 재촉했고, 옹녀는 울기를 반복하는데, 통곡 중에
생각해 보니 그 기묘한 통증이란 게 다시 한 번 당해 보고 싶은 기분
인 것이다.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뒤,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던 선비 하나가 범
에게 물려 죽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런데 옹녀가 좀 맹랑해졌다. 지나가는 남정네만 보면, 옹녀의 가
슴이 이른 봄에 기지개를 켜는 개구리처럼 팔짝팔짝 뛰는 것이다. 길
가에서 바지춤을 내리고 오줌을 내지르는 어린 동자만 보아도, 옹녀의
눈은 자꾸 그리로 가는 것이다.
'아이들의 것과 젊은이 것, 중늙은이 것과 늙은이 것은 뭣이 어찌
다른 걸까?"
옹녀가 이처럼 맹랑해진 것은, 여울가에서 겪은 급작스런 한 가지
사건 때문이다.
옹녀 나이 열 다섯이던 그 해 겨울, 옹녀는 한 가지 말 못할 고민거
리에 싸이게 된다. 임신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어느 날
갑자기 입덧 같은 것을 하게 된 것이다. 체했겠거니 생각해서 바늘로
손가락을 따보기도 하지만, 그 헛구역질은 한 번에 그치질 않는다. 결
국 옹녀는, 그것이 한양 가던 선비와의 급작스런 관계로 인해 임신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막연하게나마 믿게 되는데,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가 막막하다.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는 선비가 자신과 관계했던 바로 그 선비인
지도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그 선비가 호랑에에게 물려 죽은 사람
과는 동일 인물이 아니라 할지라도, 대책없이 아기를 낳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장원급제하면 데리러 오겠노라고 언약한 것뿐이니, 장원 급
제하지 못했으면 그 언약은 자연 공수표가 되어 버리는 것이고, 또 장
원급제를 했다손치더라도 한 해가 다 가도록 나타나지 않는 걸로 보
아선 그 언약이 거짓이었음을 입증하는 셈이다. 날이 갈수록 옹녀의
가슴은 두 근 반 세 근 반 뛴다.
"이러다 배라도 불룩해지는 날이면…"
제 얼굴값 하느라 그런다고,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아기를 낳았노라
고 멸시를 일삼을 주위의 눈총을 생각해 보니, 여자로서 그만큼 끔찍
한 수모가 더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어느 날 옹녀는 산에 올라 앞으로 저한테 닥쳐 올 일들로 고민하며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가까이서 들려오는 나무꾼 아이들의 노랫소리
에 귀를 기울인다.
"낙태약 된다고 저 장승코를 어젯밤 비 온 뒤에 또 긁어 갔소.
오목조목 들어간 고무신 자국, 키 작은 처녀가 발버팀 섰고,
우뚝하던 그 코가 없어지고도 그 자리가 한 치나 패여들었네.
캄캄한 밤중 타서 찬칼을 품고 저 장승코 베러 달려들 때에,
약한 맘 얼마나 발발 떨었노. 아니다 대담하지, 그 처녀아기."
그 노랫소리에 마음이 솔깃해진 옹녀는, 돌아가려고 하는 나무꾼 아
이들을 황급히 부른다.
"야야, 느이들 한 노래가 무슨 말이네?"
아이들은 우습다는 듯이 옹녀의 차림새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나서
대답한다.
"시집 갈 때 다 된 머리 큰 처녀가 기것두 몰라요? 여기 섰는 한쌍
의 장승 좀 보시라요."
"뭐이가 어떤데 기러네?"
"아직두 모르갔시요? 둘 다 코가 없지 않아요."
옹녀가 나무꾼 아이의 말을 듣고 장승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정말로
코가 없지 않은가.
"원래 이 자리엔 얼굴의 반이나 차지하는 부먹코가 달려 있었는데,
사내와 기거 해서 임신한 처녀들이 죄다 갉아갔디 뭐야요."
"뭐에 쓰는데?"
"뭐하긴요, 탕약처럼 달여먹는 거디요. 기러면 뱃속에 든 애가 죽어
버린다지 않습네까."
옹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멍청히 서 있자, 아이들은 별걸 다 물어본
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저희들끼리 히히덕거리며 달려
내려간다.
옹녀는 곰곰 생각하다, 마침내 작심하고 미리 멀쩡한 코를 가진 장
승을 하나 봐둔다.
그날 밤, 옹녀는 주막집에서 몰래 빠져나와 길목을 지키는 장승을
찾는다.
장승 앞에 횃불을 높이 치켜든 옹녀는 그만 화들짝 놀란다. 아침에
보았을 때는 분명히 인자하고 익살스러운 표정이 감돌던 것이, 불과
반나절 사이에 딴판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퉁방울같이 큰 눈은 옹
녀를 내려다보고 있고, 심지어 송곳니마저 빼물어 험상궂기 이를데없
는 인상이다.
옹녀는 제가 하려는 짓을 알고 장승이 성이 난 모양이라고 생각한
다. 하지만 그냥 돌아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무 대책도 없이 처녀
어멈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옹녀는 어금니를 굳게 문다.
장승을 훼손시켜 그 위엄을 떨어뜨리면, 목신(木神) 동티가 나서 재
앙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옹녀였으나, 어떤 재앙이 닥
치더라도 처녀 어멈이 되어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것보다는 나
으리라고 생각한다.
옹녀는 마침내 품 속에 넣어 가지고 온, 날이 시퍼렇게 선 칼을 꺼
낸다.
"장승님, 하릴없이 죄를 질 테니낀, 딱 한 번만 용서해 주시라요."
옹녀는 발뒤꿈치를 달싹 든 채 앞부리만으로 발버팀 서서, 준비해
온 헝겊에 열심히 장승코를 갉아 모은다. 이윽고 코의 형체가 거의 없
어지도록 장승코를 갉아 모은 옹녀는, 헝겊을 잘 싸서 품속에 넣고 주
막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옹녀는,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조심 부엌으로 들어가
약탕기에 갉아 온 장승코를 넣고 펄펄 끓인다. 장승코를 달이는 동안,
아침에 들었던 나무꾼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환청으로 다가온다. 특히
두 소절만큼은 유난히 크게 느껴진다.
"우뚝하던 그 코가 없어지고도, 그 자리가 한 치나 패여들었네."
이윽고 다 달인 탕약을 짜서 먹은 옹녀는, 그날 밤 내내 장승코 노
랫소리와 장승의 말소리에 시달린다.
"내 코 내놔라, 내 코!"
이튿날 옹녀는 이제까지보다 훨씬 심한 구역질을 느낀다. 결국 옹녀
는 참지 못하고 뱃속의 것을 토해내는데, 그것은 바로 어제 달여 먹은
장승의 코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 일이 있은 뒤로 옹녀를 괴롭히던
입덧은 깨끗이 사라진 게 아닌가.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헛구역질에
불과했던 것이지 임신으로 인한 입덧이 아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옹녀에게 혼담이 들어온다. 혼담이라고 해서 무슨
중매장이가 사이에 끼어서 왔다갔다 하는 것도 아니고, 신랑될 사람이
직접 나서서 옹녀의 양부모에게,
"나한테 저 아이를 주시오."
하는 식이다.
한 패의 장돌림, 즉 보부상(褓負商)이 옹녀가 사는 주막엘 들른다.
그들은 오랜만에 탁주를 주거니받거니 하며 갈증을 푼다. 동시에 각
처의 장터에서 겪었던 얘기, 보고 들은 얘기로 화제가 잠시도 끊이질
않는데, 그것 또한 탁주만큼이나 걸직한 것이다. 그러더니, 술이 몇 순
배 돌아감에 따라 서서히 취기가 오르게 되자, 그들의 화제는 음담패
설 쪽으로 자연스럽게 변질되어 간다.
"아, 내 그런 잡년은 첨 봤네그려. 아, 이년이 글씨, 거짓말 한 쪽박
도 안 보태서 말하는 건디, 거시기조차 천조각 하나도 안 가린 채 대
로변을 돌아치드라 이 말씀이여. 세수를 몇 날 며칠을 안 한 모양이라
얼굴에 꼬질꼬질 때가 절어서 그렇지, 그래도 원판은 아까운 인물이다
싶었는디, 아, 이년이 갑자기 뒤로 발랑 넘어간 풍뎅이 모양으로 누워
서는 사지를 버둥거리기 시작하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모두 기겁을 하
고 도망가드라 이 말씀이여. 웬일인가 싶어 나두 가까이 가 보았는디,
애겨, 아랫도리 꼴이 말이 아니더구먼. 바로 자궁탈(子宮脫)에 탈항(脫
肛)이라, 그 꼴이 너무도 흉측혀서 서방이 도망질한 게 아닐런가 하고
생각이 닿더구먼. 해서 안 됐다 허고 혀를 끌끌 차고 있던 참인디, 아
느닷없이 이 잡년이 내 다릴 부둥켜잡고설랑, 애고 내 서방, 애고 내
서방, 허고 울부짖더라 이 말씀이여. 난 귀신헌티라도 다리를 붙잡힌
것처럼 기분이 선뜩해서 기겁을 하곤 내달렸지."
한 장돌림의 얘기가 끝나자 다른 장돌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배꼽
을 잡고 웃어댄다.
"나도 봤네 봤어, 그 잡년을. 내가 봤을 땐 웬 잡놈도 같이 붙어 있
더구먼. 그 잡놈 역시 정신이 돌아서 걸친 옷이라곤 없던디, 이놈 꼴
은 또 탈장(脫腸)이라 음낭이 퉁퉁 부어설랑 왕릉만해졌더라 이 말씀
이여. 그런 꼴을 해가지곤 이 잡놈이, 자네가 말한 그 잡년의 머리채
를 움켜쥐곤, 이년 맷가마리, 이년 맷가마리 하면서 벌거벗은 몸뚱이
에 사정없이 발길질을 해대는 거지 뭐겠나. 결국은 포도청에서 달려와
두 연놈을 잡아가는 걸로 일단락됐네그려."
"거 참 부러 그랬던 건 아닐 테고 정신이 돌아서들 그건 것일 테니
참말 안됐네그려."
"그 잡년이 돈많은 마실 지주한테 몸을 버렸다지, 아마. 그 뒤로 그
서방은 매일처럼 매질이었고, 급기야는 오래지 않아 둘 다 돌아버렸다
네."
옹녀는 툇마루에 앉아 장돌림네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도, 아무튼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내 이번엔 장승 얘길 한 마디 허겄네. 이 마실 넘어오는 잔등마루
에 있는 노표(路標)장승을 보았는지 모르겠네만, 코가 한 치도 남아
있지 않더구먼. 어떤 잡년이 그 짓을 했는지 모르겄네만, 목신 동티가
나서 집안에 재앙이 돌고 말 일이제."
가만히 귀기울이던 옹녀는 순간 가슴이 뜨끔하다. 고갯마루 노표장
승의 코가 없어진 것이라면 바로 옹녀의 소행이 아닌가. 옹녀는 잔뜩
겁에 질려 장돌림네들의 오가는 말에 계속 귀를 기울인다.
"생각해 보게. 천하대장군에 지하여장군이며,방어대장군에 확위대장
군이며, 동방축귀대장군에 남방적제축귀대장군이며, 천상천하축귀대장
군지위라, 이같은 수살막이들은 마을의 악귀를 쫓아내니 벽사요 자관
문동거십리며 자관문이십리거황성팔십리라, 이같은 노표 장승들은 우
리 같은 장돌림네나 나그네들한테 길을 알려주고 또한 길을 지키니
이정표에 경계표요, 상원주장군에 하원당장군이라, 이같은 사찰 장승
들은 사원을 지켜주니 호법신이요 금표가 아닐 텐가. 이 모두가 사람
좋으라고 사(邪)를 쫓고 복을 부르기 위해서 모셔논 것인디, 어느 잡
년이 그런 못된 짓을 했을까?"
"내 생각도 그렇구먼. 본디 마을에 재액이나 병자가 생기는 건 사악
한 귀신이나 역신이 마을로 찾아와서 일으키는 게 아닌가. 옛날, 중국
땅에서 두창병(천연두)이 들어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다던가. 그
때 마을 사람들이 힘모아 추렴해 공동으로 벽수를 만들어 마을어귀에
세웠는디, 뙤놈귀신인 두신을 쫓아버렸다지 않든가. 그런 장승코를 베
어가는 걸 보면, 이 마을에도 처녀들 호려 조지고 나 몰라라 하는 시
러벳자식놈들이 제법 있는 모양이여."
"암튼 대단치도 않은 놈들일세."
서서히 그들의 얘기가 끝나갈 즈음, 그들 중 맨처음 장승 얘기를 꺼
냈던 장돌림이 툇마루에 걸터앉은 옹녀를 흘낏 쳐다본다.
"어라?"
"왜 그려?"
그가 놀라자 다른 장돌림네들도 일제히 눈길을 옹녀에게로 돌린다.
그러자 한꺼번에 많은 남정네들의 시선을 받으니 옹녀의 낯빛이 붉게
달아오른다.
"허허, 그 볼이 꼭 홍도(紅桃)빛일세. 서시가 아무리 아름다웠다 해
도 저만이야 할까?"
"어허, 이 사람아, 진정하게. 미인이면 어쩔 셈인가, 홀아비 주제에.
아무리 주막집 처녀라고는 허지만 그려도 애지중지 키우는 여식일 텐
디, 아무렴 자네헌티 주겠나?"
"반드시 그렇지만두 않네. 잠자코 있어 보게. 여보게, 주모!"
주모는 술이나 안주를 더 시키려는가 싶어 냉큼 달려온다.
"잠시만 앉게."
주모는 뭔 일인가 싶어 고개를 잠시 갸웃거리더니 이내 마루에 걸
터앉는다.
"저기, 저 아이 말이여. 자네 여식인감?"
주모는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그렇담, 내가 한 마디 헐 게 있네. 내가 장가 든 지 5년도 채 못
되어 자식두 하나 없이 홀아비 신세가 되었네. 그래서 허는 얘긴디,
저 아이가 그렇게 내 맘에 들 수가 없네. 그러니 여러 말 말고 나한테
보내게. 내 비록 장돌뱅이 신세이긴 허나, 그동안 모아둔 돈관이 꽤
되는 터니께, 주모헌티도 사례를 두둑히 허겠네. 어떤가, 몇 냥이면 되
겠는가? 딸자식 어차피 남 주고 마는 거, 그동안 먹이고 키워 준 대가
나 받아야 할 게 아닌감?"
그 말을 듣고 난 주모는 더 생각도 하지 않고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런 소리 마시라요. 누가 처녀아이를 홀아비한테 준답네까? 기러
디 않아도 벌써 다 혼담이 들어와 있시요. 신랑감이 이 마을서 소문난
장사니낀, 괜히 딴 수작 먹지 말아요. 그 사람이 들었다간 뼛가루 단
속하기도 힘들 거야요."
그 말에 옹녀는 흠칫 놀란다. 혼담이 오고갔다니, 한편으로 가슴이
설레이고 한편으론 걱정도 된다.
걱정이라면 두 가지다. 하나는, 언젠가 산길에서 만난 늙은 거지중
이 보아준 청상살이 끼었다는 사주 때문이고, 하나는 장승코를 갉아
간 데 따른 목신 동티로 집안에 해를 끼친다는 것 때문이다.
어쨌든 길일을 잡아, 옹녀는 그 마을에서 힘깨나 쓰는 장사로 소문
난 신랑과 혼례를 치르게 되고,덕분에 시집을 보낸 주막집 두 내외는
많은 금품을 사례로 받게 된다.
옹녀는 세도 당당한 양반집 규수 못지 않게 많은 결혼 예물을 신랑
으로부터 받는다.
옹녀는 행복하다면 행복하다. 비록 상것이라 해도 남부러울 것이 없
다. 제 낭군이 이 물건 저 물건 장사해서 벌어오는 돈이 쑬쑬한 것이
어서 먹고 살기에 아무 걱정이 없었으며, 밤이면 밤마다 낭군과 즐기
는 사랑놀이도 썩 만족스럽지야 않았지만 그런 대로 견딜 만은 하다.
그런데 옹녀는 제 낭군에 대해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해가 떨어
지면 물건 사러 나간다고 나가서 새벽 세 시경이 되어서야 많은 패물
을 싸들고 들어오곤 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 그때가 되어서야 옹녀
와의 밤일이 시작될 수밖에 없고, 날이 밝으면 서방은 기진맥진한 몸
으로 물건을 팔러 나가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옹녀는 우물터에서 물을 긷다가 제 낭군이 포도청
에 끌려갔다는 불길한 소식을 듣는다. 그 길로 황급히 포도청에 달려
가 보니, 천하에 대적으로 붙잡혀 형틀에 사지를 묶인 채 호되게 곤장
을 맞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 있는 집 재물을 훔쳐 몰래 팔아 넘
겨왔다는 게 죄목이다. 옹녀는 애걸복통하다 지친 끝에 집으로 돌아왔
는데, 며칠 뒤에 이방이 찾아온다.
"헤헤헤. 자네 서방이 본시 워낙 날래고 힘이 장사라, 동에 번쩍 서
에 번쩍 도둑질을 해대도 그동안 아무런 물증이 없어 잡질 못했었네.
헤헤헤. 그런데 이번에 자네 서방이 박좌수댁 패물을 훔쳐 나오다 기
진맥진하여 담에서 굴러떨어져 버린 것이네. 헤헤헤. 그 바람에 마침
지나던 순라꾼한테 맥도 못 추고 잡혀버린 걸세. 이게 다 누구 탓이겠
나? 바루 자네 색기가 대단하여 밤마다 정력을 긁어내니 아무리 항
우 장사라도 견뎌낼 재간이 있겠는가. 내 그래서 하는 얘긴데, 어떤가,
자네 서방 살려내고 싶은 생각 없는가?"
"무슨 좋은 수라도 있습네까?"
"헤헤헤. 뭐 어려운 일 아니네. 사또께서 자네를 몹시 측은히 여겨
한번 보자고 하시니, 한 방에만 잠시 들면 되는 일이네. 그러면 그날
로 자네 서방은 옥살이를 면하게 되는 걸세. 자, 어떤가? 자네만 승낙
하면 되는 일이네. 헤헤헤."
"하지만…"
"싫은가? 싫음 관두게. 나두 다 자네 위해서 이러는 거지, 누가 나
위해서 이러는 건가. 소문난 일일랑 절대루 없을 테니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옹녀는 며칠 고민 끝에, 다시 찾아온 이방 앞에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그날로 옹녀는 성질 급한 사또의 부름을 받아 한낮에 그 일을 치르
게 되고, 이튿날로 옹녀의 서방은 풀려나게 된다.
그런데, 풀려난 기쁨은 잠깐, 어찌나 심하게 곤장을 맞았던지 장독
(杖毒)이 올라 시르죽은 채 며칠을 살더니, 마침내 사지를 바르르 떨
다가 쭉 뻗어버린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인 옹
녀의 입장이 누구보다 서러울 수밖에 없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
고, 열 다섯 꽃다운 나이에 상부를 하였으니, 앞으로 길고 긴 날을 어
찌 홀몸으로 살아가랴. 더욱이 남편이 벌어놓은 것이 하나같이 도둑질
한 것이라 하여 죄다 포도청에 압수당하고 말지 않았는가.
한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그게 다 제가 저질러 놓은 잘못 같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장승코를 갉아내 노표 장승의 위엄을 훼손시킨 데
따른 재앙이 아닌가 싶다.
며칠이 지나자 옹녀의 마음은, 제 몸을 한 번 품은 적이 있는 사또
에게로 자꾸 쏠려간다. 사또의 측실로라도 들어갔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사또는 옹녀와 관계한 이후로, 옹녀와 너무 과격한 정사를
했던 탓에 기물이 퉁퉁 붓더니 점차 전신으로 퍼져가 시름시름 앓던
끝에, 마침내는 더 견디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가고 만다.
그런데, 옹녀 나이 열 일곱이 되던 해, 낯설지 않은 한 사내가 찾아
온다. 언젠가 주모에게 옹녀를 자기한테 시집보내라고 청한 적이 있는
장돌림이다.
"내 자네가 상부하였다는 말을 듣고 불원천리 머나먼 길을 이렇게
헐레벌떡 찾아왔구먼. 어떤가? 이젠 자네도 과부 신세니 나랑 살면 구
색이 딱 맞지 않을 텐가. 내 자네한테 주려고 이렇듯 온갖 패물을 장
만해 왔구먼."
옹녀는 결국 늙은 거지중이 걱정했던 '열녀불갱이부'의 미덕을 깨뜨
리고 장돌림한테 재취(再娶)로 가는 것을 허락한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인가. 첫날밤부터 일이 난다. 해도 해도
지치지 않는 옹녀에게 보조를 맞추느라 이 미련한 장사꾼이 소녀경의
방중술을 몸으로 응용하여 대드는데, 한때의 기분을 나누어 즐기려고
참기를 거듭한 것이, 급기야는 급상한에 나가떨어지고 만다. 이튿날
날이 밝기 무섭게 서방은 송장이 되어 나간다.
이번엔 어쩌자고 첫날밤 회포마저 제대로 못 풀었으니, 옹녀 가슴에
응어리진 욕구불만이 두드러기처럼 전신에 돋아나곤 한다. 하지만 그
런 건 옹녀 마음이고, 세상은 옹녀 마음과 또 다르다. 마침내 옹녀의
사주에 청상살이 겹겹이 쌓였다는 흉흉한 소문이 바람을 타고 거리마
다 나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랬으나, 옹녀의 미색에 넋이 나간 남정네
들은 그 소문을 애써 무시하려고들 든다.
옹녀의 나이 열 아홉 되던 해, 옹녀의 새 서방이 되려고 몰려든 남
정네가 뭉게구름 같은데, 그동안 서방이 남겨 두고 간 재산이 꽤 많아
서, 이번엔 돈푼은 없더라도 자신의 기분을 충족시켜 줄 수 있을 만
한, 그 가운데 가장 큰 기물의 소유자라는 건달을 새 서방으로 맞아들
인다. 버는 것 없이 돈 씀씀이가 헤프기는 해도, 물건값을 하는지 몇
달 동안은 잘 버티어 나간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서방은 화
류병(花柳病)의 한 가지라는 당창병(唐瘡病)에 걸려 죽고 만다.
이미 '열녀불갱이부'의 미덕을 두 번씩이나 깨뜨린 옹녀는 다음 서
방 맞는 일에 거리낌없이 된다.
벌써 세 서방이 죽었는데도 우연이라 여기며, 미색에 빠진 남정네들
은 또다시 옹녀를 차지하기 위해 경합을 벌인다. 결국엔 옹녀 나이 스
물 하나 되던 해에 집 잘 짓기로 소문난 어느 목수를 서방으로 맞았
는데, 그 목수의 능력도 여간이 아니어서 목수일도 그만둔 채 한 달포
간 옹녀의 애타는 정열을 충족시켜 준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디서 옮
아왔는지 문둥병의 한 가지라는 용천병에 걸린 그 서방은, 날 가리지
않고 피고름을 흘리더니 마침내 흉측한 몰골로 송장이 되고 만다.
타고난 미색이라 재가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으나, 맞는 족족 서
방이 목숨을 잃으니, 옹녀를 향하여 청상살이 겹겹이 낀 청상과부라는
소문은 점점 무성해진다. 그년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가는 황해도와
평안도 양쪽 땅을 다 합친대도 불알 두 쪽 온전히 찬 놈 없게 될 거
라고, 그리하여 종국엔 양서땅을 여인만 사는 남성 불모지로 만들어
버릴 거라고, 황해도와 평안도에 적을 둔 여염집 아낙네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옹녀를 두고 그렇게 입방아를 찧어댈 정도다. 옹녀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데 견딜 재주가 없다. 그래도 내 집이 좋아
버티고 앉았는데, 몽둥이를 든 아낙네 부대가 쳐들어와 고래고래 소리
를 지른다.
"당장 양서땅을 떠나거라, 이년아! 네년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우리
두 도내에 물건 단 놈 다시 없고, 마지막엔 여인국이 될 테니 쫓을 수
밖에 수가 없네! 어서 꺼져라!"
곧 몽둥이 세례를 받을 판국이라, 옹녀는 문을 빠꼼히 열고 소리친
다.
"갈 땐 가더라도 외출 채비는 해야디요!"
역시 미인은 꾸밈새가 다르다. 옹녀가 방에서 나오는데, 그새 동백
기름 곱게 발라 낭자를 곱게 하고 산호 비녀를 찔렀으며, 파랑 봇집을
옆에 낀 출유 장옷 차림이다.
"저년이 쫓겨나면서도 냄새를 피우네!"
아낙네들의 언성이 높자 옹녀가 소리친다.
"어허, 인심 흉악하다! 황해도 평안도 아니면 살 데가 없겠느냐? 삼
남 좆은 더 좋다고 하지 않네!"
옹녀가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마을을 내려다보니, 자기가 여러 서방
을 죽여 내보낸 초가가 아름답게 불타고 있다. 눈물이 옹녀의 고운 볼
을 타고 구슬처럼 흘러내린다.
"저래도 자신있겠소?"
오만불 박사가 다시 묻는다.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씀이군요."
"그래요."
"하지만 다 죽을 만한 이유가 있군요."
"이유?"
"옛날 사람들이라 저런지는 몰라도, 섹스를 하는 짓이 너무 동물적
이지 않습니까?"
"동물적?"
"성교에만 의존하고 있단 말이지요. 전희나 후희가 없어요."
"그것과 죽음과 연관이 있단 말이오?"
"힘만 들지 평온한 쾌락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몸이 지칠 대로 지
쳐서 얼마 못 가 쓰러질 밖에요."
"학생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신상 카드에 나와 있는데 무슨
수로 그런 걸 잘 알고 있소?"
"헤헤…한때 오팔팔 등지에서 기둥서방 아르바이트를 좀 했었습니
다."
"별 아르바이트가 다 있군."
"그건 그렇고 한시바삐 가고 싶군요. 저만큼 아리따운 여자를 이제
껏 본 적이 없어요."
"도착 지점은 삼남으로 내려가는 옹녀와 양서로 올라가는 변강쇠가
만나는 장소로 해주겠소. 그러니 옹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변강쇠를
어떡하든 물리쳐야만 할 거요."
"그래서 이렇게 무기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가스총."
"그럼 변강쇠의 인상착의를 한번 봐두는 게 좋겠군."
오만불 박사의 리모콘 조작에 의해 벽면에 다시 화면이 비쳐나오고
거기에는 우람한 체구의 변강쇠가 들어 있다.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럼 탑승하시오."
타임머신 안으로 들어가자, 스피커를 통해서 오만불 박사의 목소리
가 더 들려온다.
"시간을 잘 맞춰 도착 지점에 다시 와야 하오. 그 시간을 놓치면 영
영 이조 중엽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니까. 단, 옹녀를 현재로 데리고
돌아오는 것은 당신의 자유요."
"1천만원의 여행비에 겨우 48시간이라니…"
나는 투덜거리며 안내 방송에 따라 안전벨트를 잠근다. 잠시 후, 휘
이이익 하는 회오리바람 소리와 함께 나는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이다.
밤인지 낮인지도 알 수가 없다.
"아아…"
나는 짧게 신음을 흘리며 풀밭 위에 누워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여기가 이조 중엽의 한반도란 말인가…깊은 계곡에 여행을 왔을 때와
같아서 별다른 곳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다만 두렵고 외로운 것
만은 사실이다.
"앗!"
나는 인기척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밤나무 뒤로 숨는다.
"어, 피곤허다!"
고갯마루에 이르러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 갓 쓴 사내의 모습이 영
락없는 변강쇠다. 나는 좀 미안하지만 옹녀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어
가기 때문에 서둘러 변강쇠를 잠재우기로 작정한다. 그래서 슬금슬금
다가가 느닷없이 소리친다.
"이보시오, 변강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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