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0일 일요일
(야설)간통 그황홀한 유혹4
현숙은 조금 전과 다르게 김현세의 입술이 얼음을 머금었던 것처럼 차갑다는 느낌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약속을 해 버렸다. 밖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현숙은 이상하도록 가슴이
편해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마치 기다리고 있던 매를 맞아 버린 후에 가슴이 편해지는 그
런 기분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김현세를 두려워했던 것은 가정이 깨질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를 향한 목마름이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여하튼 그를 만나고 나
서부터는 기분이 한결 낳아졌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지는 한참 되었는지 보도불럭이 물에
젖어 번들거리고 있는 것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잔뜩 움추린체 골목을 빠져나갔다. 영이네
는 때묻은 목장갑을 낀 손으로 사과를 한알, 한알 닦아 내고 있었다. 박스 안에 들어 있던
사과가 그녀의 장갑 낀 손을 한번씩 스쳐 지나갈 때마다 윤이 나도록 반짝 거렸다.
"갑자기 왠 비 래요."
현숙은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들었음에도 짐짓 모르고 있었던 표정으로 우산을 접으며 웃
음으로 인사를 했다.
"글세 말여. 이왕 내릴 비면 장대비처럼 쏟아져 내릴 일이지, 과부 기분 심숭생숭 해 지게
왠 가랑비가 내리는지 모르겠네."
현숙은 영이네 가 닦아 놓는 사과 중에서 알이 굵고 큰 것으로 몇 알 고르기로 하고 그녀
옆으로 갔다.
"사람이나 과일이나 때깔이 좋아야 실속이 있능겨. 이 사과 맛이 그만잉께. 이왕이면 많이
사가 덤으로 하나 더 줄팅게 말여."
영이네는 현숙이야 사과를 고르던 말던 하던 일을 계속 했다.
"사과 값이 비싸서 많이 살수가 있어야죠. 천 원에 얼마씩 한데요?"
"세 개에 천원만 줘. 모래내 시장 가도 여기 보다는 비쌀 겨. 그라고 말여, 계, 는 들 거지?
이 번으로 줄텡께 꼭 들으라고. 들어서 손해 볼거 없어. 이 번이면 공짜나 마찬가지 아녀.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저 밑에 공터 옹기장수 알지. 그 여편네가 이 번 달라고 사정사
정 했쌓는 걸. 승혜 엄마 생각해서 삼번 으로 미뤘잖어. 그라니까 내 체면을 생각해서라두
계는 꼭 들어야 햐. 알았지?"
"그 분한테 이 번을 주시지 왜 저한테 이 번을 주시려고 그러는 거예요. 저는 아직 결정도
안 내렸는데."
현숙은 이 번을 준다는 말에 구미가 당기긴 하나 결정을 내리지 않은 체 웃으면서 반문했
다.
"그 여편네야 서울 슈퍼 단골 아님감. 그라고 승혜 엄마는 우리 집 단골잉께 당연히 이 번
을 줘야지 안 그려? 그라고 결정을 내리고 안 내릴 것도 없어. 막말로 은행에 가 봐. 적금
한달치 불입했다고 원금을 내 줄거 가텨. 어림 반푼 어치도 없지. 그것 뿐인 줄 알아. 인감
증명서 떼와라. 보징인 안쳐라, 귀찮은 서류가 좀 많아. 그랑께 우리 같이 없는 사람들은 뭐
니뭐니 해도 몫돈 만드는 데는 계만큼 좋응게 없어. 하긴 승혜 내야 남편 직장 확실하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월급날 만 되면 돈이 착착 나오니까 해당 사항 없는 말인지도 모르지
만 말여."
영이네가 현숙을 계원으로 끌어 드리는 이유는 마지막 말에 있었다. 재벌 회사는 아니지만
이름만 대면 쉽게 떠오르는 중소 기업체에 다니는 남편을 둔 현숙이 계원이 된다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 제법 믿을 만한 사람만 계원으로 가입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줌마 말대로 이 번을 든다면 그만큼 불입액도 많아지잖아요?"
현숙은 계를 들어보고 싶은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을 느끼며 구체적으로 물었다.
"불입액이 많은 거야 당연한 거 아녀. 그란데 아무리 불입액이 많다 해도. 삼 백 만원에 대
한 이자 보다는 작응께. 그런 걱정일 랑 하지도 말아."
계의 구조가 선 순위로 갈수록 불입액이 많아지고 후순위로 갈수록 불입액이 적어지게 마련
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계금을 미리 타면, 늦게 타는 사람들의 이자를 보충해 주게 되고, 늦
게 타는 사람은 불입액 총액이 원금 보다 적게 된다. 영이네는 계 오야를 하는 틈틈이 사채
놀이를 하여 쏠쏠한 재미를 보는 여자답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얼굴로 잘라 말했다.
"하긴 그런 맛에 계를 든다고 하는 말은 들었어요."
현숙은 사과를 비닐 봉지에 담아 놓고, 냉장고로 가서 피티병에 든 콜라를 꺼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 말이 바로 그말여. 그라고 곗돈을 타면 내가 믿을 만 한데다 놔줄게. 한 달에 육만 원씩
착착 나오는 구멍에다 말여. 그람 말번 보다 원금이 훨씬 적게 들어 갈껴. 그랑께 두 말 하
지 않게 계 드는 걸로 생각햐. 알았어?"
영이네 는 현숙의 돈을 다른 사람한테 빌려주고 적어도 이부 오리는 받을 생각을 하고 있었
다. 그렇게 되면 가만히 앉아서 한 달에 만 오천원 씩 굴러 들어오는 셈이 된다.
"알았어요. 하지만 꼭 든다는 말은 아니고, 승혜 아빠하고 상의를 해 봐야 하니까 지금 확답
을 지을 수 없군요."
"그랴. 아직 시간은 많으니께 천천히 생각해도 상관없지 뭐."
영이네 는 현숙이 가입하는 쪽으로 확신을 둔체 가능한 부담을 갖지 않도록 쉽게 대답했다.
현숙이 종점 슈퍼를 나와 집으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을 때는 제법 빗줄기가 굵어 졌을
때 였다. 우산을 쓰지 않은 오십대 여자가 머리카락과 어깨가 늘어지도록 비를 맞고 지나가
는 것을 보고 걸음을 빨리 했다. 우산을 가지고 학교 앞에 가서 승혜를 기다리기 위해서 였
다. 슈퍼에서 사 온 물건들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곧 바로 밖으로 나갔다. 문을 잠그기 위해
문 앞에 돌아섰을 때 안에서 전화벨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현세 일꺼라는 생각이 번쩍
들어서 얼른 전화기 앞으로 갔다.
아냐, 오늘은 승혜 생일 이잖어. 내가 왜 그걸 몰랐지......
현숙은 다시 절망하기 시작했다. 다른 날도 아닌 딸의 생일날 김현세와 거실에서 뜨겁게 흐
느꼈던 일이 뼈가 저리는 후회로 내려앉았다.
이러면 안돼!
현숙은 수화기를 들지 않았다. 전화벨 소리는 여전히 귀청을 때렸다. 코드를 빼 놓을까 하다
가, 혹시 남편한테 전화가 걸려 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밖으로 나왔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승혜가 비를 맞고 오기 전에 빨리 가야겠다며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앞으로는 절대 만나지 않겠어.
다른 날도 아니고 딸의 생일 날 불륜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입술을
꼭 다물고 총총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 나오면서 부터는 또 생각이 바뀌었다. 만나지는 않더
라고 전화를 하지 말라고 말하고 나올 걸 그랬나, 하고 후회를 하면서 버스 정류장이 있는
푸른 약국 앞으로 나왔다. 학교는 신호등을 건너서 언덕 위에 있었다. 건너편으로 우산을 손
에 든 여자들이 색색의 우산을 쓰고 언덕을 올라가는 게 보였다.
승혜야 엄마가 잘못했어!
현숙은 불륜에 눈이 먼 엄마를 둔 덕분에 혼자 외롭게 서 있을 승혜를 생각하니 눈물이 쏟
아 졌다. 우산으로 앞을 가리고 얼른 눈물을 닦아 내며 부지런히 걸었다.
승혜야!
학교 정문 앞에는 우산을 들고 온 학부형들이 무리를 이루고 서성거리고 있었다. 다행이었
다. 승혜네 반은 물론이고 모든 학급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그때부터는 오직 승혜만 생각하며 십여 분 기다리고 있으니까 아이들이 한 명
두명씩 나오기 시작했다. 기다리던 학부형들은 반가운 얼굴로 아이들을 맞이하여 우산을 쓰
고 언덕 밑으로 내려갔다.
혹시!
기다리고 있으면 당연히 승혜가 깡충깡충 나올 것이 분명하면서도 불안했다. 자신의 불륜을
욕하며 학교 뒷문을 통해 도시 어느 곳으론가 가 버리고 말았을 것 같은 불안감이었다.
정말 그런 건가?
현숙은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언제부턴지 손바닥에 땀이 진득하게 고여 오는 가 하면, 혀가
꺼칠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입안이 바짝바짝 타고 있었다.
휴!
승혜 였다. 승혜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빠져나간 다음에 뒤늦게 나타났다. 그 뒤에 보람이가
빗줄기가 내려꽂히는 운동장을 쳐다보며 천천히 뒤 따라왔다.
"왜 이제 나오는 거니? 엄마가 한참이나 기다렸는데."
현숙은 해맑게 웃는 승혜를 꼭 껴 않고 마구 뽀뽀를 해댔다. 기쁨의 눈물이 글썽거리도록
뽀뽀를 하다가 쓸쓸한 모습으로 서 있는 보람이를 의식하고 허리를 폈다.
"응. 보람이네 반이 늦게 끝났잖아. 그래서 복도에서 기다리느라고 늦었어.
"저런 우리 승혜 착하기도 해라. '
현숙은 다신 한번 승혜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에 보람이 앞으로 갔다. 밖에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 받지 않는 전화를 걸고 있을 김현세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 우리 보람이도 이 우산을 써."
보람이에게 우산을 건내주려니까. 그 동안 잊고 있었던 그 무엇이 떠올랐다. 바로 보람이 였
다. 단순히 보람이가 김현세의 딸이라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지, 자신이 김현세에게 이끌려
갈수록 엄마가 없는 보람이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어 할까 를 생각하니 그 어떤 유혹이 있더
라도 김현세와 정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엄마! 나 내 친구들 우리 집에 오라고 했어. 내 생일이라고 말야."
승혜가 우산을 뒤로 젖히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잘했구나. 그런데 생일이란 말은 하지 말지 그랬니. 애 들이 부담스러워 하지 않을까?"
"괜찮을 꺼야. 나도 친구들 생일날 선물 사 가지고 갔잖아."
"그래. 잘했다. 보람이는 아빠가 마중 안 나와서 섭섭하겠구나."
현숙은 승혜와 보폭을 맞추며 걷고 있는 보람이에게 죄책감에서 비롯되는 미소를 보냈다.
"아빠는 지금 주무실꺼에요. 어제 저녁에 밤을 꼬박 새웠거든요. 그리고 저는 비 맞는 게 좋
아서 아빠가 마중 안 나와도 괜찮아요. 아줌마."
현숙은 보람이의 말을 듣고 저윽이 놀랐다. 승혜와 같은 나이 이면서, 너무 어른스러워 보였
기 때문이다. 늘 텁수룩한 턱수염에 잠을 덜 잔 듯한 얼굴로 세상을 권태스럽게 살아가는
듯한 김현세의 새로운 면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더 이
상은 그에게 털끝만 한 관심도 가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였다.
"보람아, 우리 아빠가 내 생일 선물로 오늘 저녁에 게임기 사 온단다. "
횡단보도 앞에 멈추었을 때 승혜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언제부턴지 소나기는 부드러운 안개
비로 변해 있었다.
"정말?"
보람이가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어 손바닥으로 비를 느끼고 있다가 반문했다.
"그래. 엄마 내 말 맞지?"
"보람이는 벌써 아빠가 게임기 사줬는걸?"
현숙은 우울한 얼굴로 대답하고 차도로 내려서는 승혜의 손을 잡아 인도로 올라오게 했다.
"하지만, 아빠가 사 오는 게임기는 보람이 것 보다 더 좋을 꺼야. 엄마 내 말 맞지?"
우산을 보람이에게 건네준 승혜는 현숙의 손을 뿌리치고 차도 와, 인도 사이를 강아지처럼
깡충거리며 콧노래를 불렀다.
"승혜야 보람이처럼 가만 서 있어. 위험하잖아."
현숙은 제과 회사의 로고가 찍혀 있는 트럭 한 대가 눈길을 미끄러 지듯이 스쳐 가는 것을
보고 승혜의 손을 잡아 당겼다.
"어. 푸른 신호등이다!"
승혜는 현숙에게 잡힌 손을 풀으며 단 걸음에 횡단보도로 로 들어섰다. 그때 였다. 빨간 색
프라이드가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오더니 앞 범퍼가 승혜의 허리에 닿으려는 직전에 끼익 멈
추었다.
"엄마!"
승혜는 빨간 색의 차가 제 앞으로 덮쳐 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제 풀에 놀라서 미끄러졌다.
"승혜야!"
현숙은 우산을 집어던지고 승혜에게 달려들었다.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듯한 놀라움 때문에
눈앞이 캄캄한 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승혜의 새빨간 피가 빗물에 얼룩져 있
을 것 같은 환상 속에 승혜를 쳐다보았다.
"승혜야!"
현숙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승혜의 상체를 일으켰다.
"엄마. 나 안 다쳤어."
승혜는 현숙이 이끄는 대로 일어서서 엉덩이와 어깨에 묻은 빗물을 툭툭 털어 냈다.
"다치지 않았니?"
현숙 못지 않게 놀란 운전사가 승혜의 눈을 털어 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체 물었다.
"괜찮아요. 아저씨. 미끄러졌을 뿐이에요."
승혜는 멋쩍은 얼굴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끌어올리며 씨익 웃었다.
"정말 괜찮은 거니. 병원에 안 가 봐도 돼?"
현숙은 안심할 수 없었다. 승혜의 다리며, 팔 허리 어깨를 매만지며 다급한 음성으로 물었
다.
"걱정이 되시면 병원에 가 보시죠. 제가 느끼기에 차에 부딪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
삼십대 의 운전사도 그게 좋다는 얼굴로 현숙에게 말했다.
"엄마, 나 병원에 안 가도 돼. 여기 닿지 않고 그냥 미끄러졌을 뿐야."
"정말 안 아퍼. 다친 데도 없구?"
보람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응. 하나도 안 아파."
현숙은 신호등이 바뀌는 것을 보고 일단 승혜를 푸른 약국 앞 인도로 데리고 나왔다.
"괜찮을 꺼예요. 저도 약방 안에서 봤는데 차에 부딪친 것 같지는 않더라구요."
푸른 약국 문이 열리면서, 약사 가운을 입은 주인 여자가 현숙에게 아는 체 하며 거들었다.
"휴! 다행이다. 엄마 말 안 들으니까, 이런 꼴을 당하잖아. 정말 병원에 안 가 봐도 되겠니?"
"정 걱정이 되시면 일단 하룻밤 자 보고 내일이라도 연락을 주시죠."
프라이드를 인도에 붙여서 주차해 놓고 횡단보도를 건너 온 운전사가, 약사의 말에 힘입어
명함과 주민등록증을 내 보였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라 혹 모르니까. 연락처를 적어 두기로 하죠."
현숙은 약국 안으로 들어가 팬을 빌려서 명함 뒷면에 운전사의 주민등록증 전화 번호를 적
었다. 그리고 놀랐을 지도 모르는 승혜를 위해 청심환을 한 알 산 다음에 밖으로 나왔다.
"엄마, 영진이도 불러도 돼?"
승혜는 언제 교통사고를 당할 뻔했느냐는 얼굴로 보람이와 재잘거리고 있다가 약국을 나오
는 현숙에게다가 왔다.
"영진이가 누구니?"
현숙이 굳은 얼굴로 되물었다. 승혜가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는지 비로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만약 집을 나오기 전에 김현세와 약속을 하고 나왔더라면 분명히 사랑하는 딸 승
혜는 죽어 버렸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승혜를 앞세우고 집에 도착한 현
숙은 문을 열기 위해 손 지갑을 열었다. 집안에서 문을 잠글 때처럼 다시 전화벨 소리가 울
렸다. 김현세가 분명했다. 빨리 전화를 받아서 이 순간부터는 관계를 끊어야겠다고 서둘러
열쇠를 돌렸으나, 문고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엄마 빨리 문 열어 봐. 전화 왔어."
"지금 열고 있잖어."
현숙은 열쇠 구멍에서 열쇠를 빼서 다시 한번 집어넣고 돌렸다. 쇠의 둔탁한 마찰음 속에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둘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 정신없이 울어 되던 전
화벨 소리가 안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뚝 멎어 버렸다.
"여보세요."
현숙은 전화가 끊어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화기를 들어보았다. 생각했던 것처럼 전화는 이
미 끊어진 상태 였다. 보람이가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김현세가 수화기를 내려놓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어디서 걸려 온 전화야?"
승혜가 뒤 따라와서 물었다.
"응. 우리가 전화를 안 받는 줄 알고 끊었나 봐."
현숙은 전화벨 소리를 피했던 때 와 다르게 어서 전화가 오길 기다렸다. 팔짱을 끼고 전화
기 옆에 서 있는데 방안에서 승혜가 제 생일을 스스로 축하하는 노래 소리가 흘러 나왔다.
♣ 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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