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3일 수요일

(야설명작)러브타임2


  "뭐, 뭐야?"
  변강쇠는 생전 구경해 본 적이 없을 나의 현대식 옷차림에 크게 놀
란다.
  "미안하지만 잠들어 주시오?"
  나는 지체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긴다. 변강쇠는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곧 고꾸라진다. 나는 변강쇠의 다리를 잡고 그의 몸을 질질 끌
어 길가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이동시켜 놓는다. 그리고 변강쇠의 도
포 차림으로 갈아 입을까 하다가  그냥 있기로 한다. 현대인의 모습을
보았을 때 옹녀의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아!"
  나는 입밖으로 소리를 내었을 정도로 소스라치게 놀란다. 옹녀가 나
타난 것이다. 저렇게 고울  수가 있을까. 화면으로 본 것보다 더  예쁘
다. 나는 오래 기다리고  있을 재주가 없다. 곧 달려나가 옹녀의  앞을
가로막는다.
  "낭자!"
  "오머! 누, 누구야요?"
  크게 놀라는 옹녀의 모습이 한결 아름답다.
  "당신을 사모해 온 1996년의 남자요!"
  "오머! 귀신!"
  옹녀는 얼른 몸을 돌려 달아난다.
  "옹녀! 나는 귀신이 아니오! 기다려요!"
  <제1화 '옹녀 죽이기'는 다음달로 이어집니다.>

제  목 : 김선영 패러디 연작소설 - 러브 타임머신  제2화 춘향이 바람났네
  1996년 현재로 데려온 옹녀가  없어졌으니 큰일도 보통 큰일이 아니
다. 그녀의 곁에  내가 없어서는 그녀가 봉변을  당할 게 뻔한 일이다.
대관절 어디로 사라져 버렸단 말인가.
  그런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길래 얼른 가보니 이게 웬
망측한 일인가. 건물의 왼쪽 담벼락을 끼고  돌아간 골목길에서 옹녀가
소변을 보고 있고, 그 광경을 사람들이 둘러서 보고 있는 것이다.
  "비켜요, 비켜!"
  그때 의무경찰 두  명이 소리치며 군중들 사이로 파고  들어간다. 겁
에 질려 있는 옹녀가 일을 다 마치고 일어서자 의무경찰 한 명이 손을
내민다.
  "주민등록증 좀 봅시다."
  '주민등록증'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는 옹녀는 잔뜩 울상을 짓고 서
있다. 그런데 그 울상을 짓고 서 있는 모습이 너무도 아리땁다. 아리따
운 여인에게,  그것도 어디 잔칫집에나  다녀올 옷차림을 한  여자에게
노상 방뇨를 한 죄로 범칙금을  물려고 한 것이 너무 가혹하다 싶었는
지 의무경찰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린다.
  "이번 한 번만 봐드릴  테니 다음부턴 아무리 급해도 노상에서 방뇨
하지 말아요. 거리가  더러워지는 거야 그렇다치고, 당신부터가 낯부끄
럽지 않습니까."
  다른 의무경찰이 다행히 그렇게 말한다.
  "오, 옹녀 씨…"
  나는 얼른 다가가 그녀를  구출하듯이 군중들 틈바구니에서 끌고 나
온다.
  "당신은 누구요?"
  갑작스럽게 나타난 내가 수상쩍은지 의무경찰 한 명이 묻는다.
  "나, 남편이오."
  "맞습니까?"
  그 의무경찰이 옹녀에게  묻는다. 옹녀는 여전히 겁에 질린  채 고개
를 끄덕끄덕한다.  나와 옹녀가 사람들  틈에서 벗어나자 입이  고약한
사람들이 중얼거린다.      "억세게 재수좋은 놈이네."
  "저딴 미인은 미스코리아 가운데도 없는 것 같군."
  "에이, 된장같은 내 마누라 생각하니 열만 받치는군."
  저만치 가서 슬쩍 뒤돌아보니 그 사내가 침을  뱉고 있다. 그러자 의
무경찰이 돌아가려다 말고 뒤돌아선다.
  "주민등록증 좀 봅시다."
  그러면서 손을 내민다. 침을 뱉은 죄로 범칙금을 물리자는 거다.
  "아니…저 여잔  아리따운 여자라서  놔두고, 나는 무식한  남자라서
경범죄란 말인가?"
  이래저래 말썽이다. 그래서  '미인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속담이 있
는 모양이다.
  나는 얼른 택시를 불러세워 옹녀를 태운다.
  "어디로 모실까요?"
  "K시 G동이오."
  "더블 요금을 주셔야 되겠는데요."
  교외로 나가려면 꼭 이런 식이다.
  "알았습니다."
  택시에서 내린 나는 옹녀의  손목을 잡아 끌다시피하며 동네 사람들
의 눈에  띌세라 부리나케 걸어간다.  어디서 저렇게 아리따운  여자를
데려왔나 궁금해 할  건 뻔한 일이다. 그런데 1천 만원을  지불하고 타
임머신을 이용하여 그녀를 데려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나를 미친 놈 취
급할 것이다.
  이제 10가구가 모여 사는 집엘  들어가면 머지 않아 들통날 게 뻔하
다. 이조 시대 여인이 갑자기 1996년식으로 바뀔  리 없고 보니 벗어날


재간이 없는 노릇. 중국 연변 교포를 데려왔다고  하면 어떨까? 그렇게
궁리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집 앞에 다다랐다.
  그런데 다행히 내가  사는 문간방 앞까지 아무도 눈에  띄지 않는다.
10가구가 살고 있어도  이따금 이렇게 아무도 눈에 띄지 않을 때가 있
다. 주부들마저 다들 일을 나간  건 아니지만, 누구 한 사람 집에 모여
들어 수다를 떨고 있을 때 그렇다.
  나는 얼른 문간방 문을 열고서 옹녀를 데리고  쑥 들어가 버린다. 문
을 열면 바로 욕실  겸 부엌이다. 그리고 한 번 더 문을 열면  나의 소
중한 단칸방이다.
  "어때요, 옹녀? 여기가 바로 나의 누추한 보금자리요."
  옹녀는 여전히  어리둥절한지 사방을 휘둘러보며  아무런 대답이 없
다.
  "자, 편안한 마음으로 방바닥에 앉아 있어요. 아무도 당신을 해칠 사
람은 없으니까."
  그런 말 한  마디에 안도의 숨을 쉴 수  있다면 그녀는 이조 시대의
여인이 아닐 것이다.
  "배고프지요?"
  이번엔 나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럼 뭣 좀 요기를 해야지…"
  부엌으로 나가 보니  전기밥솥의 밥도 쌀통의 쌀도  모두 떨어져 있
다. 다행히 라면 두 개가 눈에 띈다.
  나는 냄비에  물을 넣어 가스렌지 위에  올려 놓고 불을 켠다.  물이
끓는 동안 냉장고 안에서 양파와 대파, 당근을  꺼내어 도마 위에 올려
놓고 알맞게 썰어낸다. 마침 냉장고 안에는 오징어  한 마리도 들어 있
다. 마른오징어가 아니다. 며칠 전에 횟감으로 썰어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려고 사두었던 물오징어다. 나는 그 물오징어도  꺼내어 먹물이 든
눈알과 내장을 파낸 다음 역시 적당한 크기로  썰어 놓는다. 지극한 정
성으로 옹녀에게 1996년의 라면맛을 선보이고 싶은 것이다.
  마침내 물이  끓기 시작한다. 나는  라면을 넣고, 분말 스프를  넣고,
건더기 스프를 넣고, 당근을 넣고, 양파를 넣고, 대파를 넣고, 물오징어
를 잇따라 넣는다.  물오징어가 채소보다 늦게 익을 것  같지만 이상하
게 빨리 익는다. 돼지고기와 비교해 보면 너무 빨리 익는다.
  하기야 내가 한가하게 지금 과학 공부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시
간 여행과 낯선 공간과의 맞닥뜨림으로 인하여 지쳐 있을 옹녀의 입맛
을 돋우어 주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
  라면에는 역시 김치가 제일이다. 나는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어 상
을 차린다. 다 익은 라면을 엇비슷하게 두 그릇 담아낸다.
  "옹녀, 오래 기다렸죠?"
  나는 방안으로 상을 들고 들어가며 말한다.
  "아, 아니야요…"
  얼큰한 라면 국물  냄새가 나자 옹녀는 간신히  기운이 나는 모양이
다. 사람 많은 곳에서  망신을 당한 이후로 처음 입을 떼어  놓은 것이
다.
  "자, 어서 들어요."
  나는 상을 내려 놓고서 말한다.
  "오머…구, 국수 아니야요?"
  "그래요. 국수 비슷한 거지요. 이 젓가락으로 국수 먹듯이 먹으면 돼
요."
  내가 옹녀의 손에 젓가락을 쥐어 주자 그녀는 마침내 1996년의 라면
을 먹기 시작한다. 한 젓가락 먹더니만 희색이 만면해진다.
  "와…이게 정말 국수야요? 너무나 맛있구만요."
  "김치로 간해서 들어요."
  음식을 먹는 미인의 입은 정말 아름답다. 하물며 옹녀의 입임에랴.
  김치까지 깡그리 먹어치우고 난  옹녀는 더 없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더 먹고 싶어요?"
  "아, 아니야요. 물이나 좀 먹으면 되갔시요."
  "아차, 내가 물 주는 걸 잊었군."
  나는 얼른 부엌으로  나가 냉장고 안에서 보리차를  꺼내어 한 대접
따라다 준다. 옹녀는 포만감에 졸음이 오는지 눈을 가늘게 한다.
  "옹녀, 잠이 올  것 같으면 여기 누워요. 참, 이  팬티라도 갈아 입고
누우면 어떨까?"
  나는 옹녀에게 오만불 박사가 선물한 팬티를  내민다. 옹녀는 팬티를
상자에서 꺼내어 보더니 웃는다.
  "아니, 요 조막만한  걸 어떻게 입으란 말이야요? 한쪽  방댕이만 해
도 수박만한데."
  "그래도 다 들어가니까 입어 봐요. 그게  작아 뵈도 항문 괄약근처럼
늘어났다 줄었다 하거든."
  옹녀는 연노랑색 삼각팬티를 만지작거리다가 내려 놓고는 출유 장옷
차림을 하나하나 벗기 시작한다. 속치마를 풀어내고 속곳과 고쟁이, 다
리속곳을 차례로 풀어 내린다. 다시 한 번  보는 알몸이지만 여전히 눈
부시다. 아무리 발달한  피부 관리술의 혜택을 입은 여자라  해도 저만
은 못할 것이다. 나는 은밀한 부위를 오래  쳐다보지 못하고 눈을 내리
감는다.
  잠시 후.
  "정말, 정말이구만요? 요게 방댕이를 싹 감춰 버리는구만요."
  나는 다시 눈을 올려  뜨고 쳐다본다. 정말 아름답다. 연노랑색 삼각
팬티가 그녀에게는 너무도 잘 어울린다.
  "이대로 자도 되갔시요?"
  "가만…내가 옹녀의 옷을 사러  다녀와야 할 테니까 그 동안 이거라
도 입고 있어요."
  나는 벽걸이에서 내가 입던 트레이닝복을 내려  옹녀에게 내민다. 옹
녀는 그것을 위아래로  입고 자신의 팔과 다리  길이에 맞게 접어올린
다.
  하늘색 트레이닝복 차림도 옹녀에게는 참 잘 어울린다.
  "내가 밖에서 문을 걸고 갈 테니까 누가 문을 두드리더라도 열어 주
지 말아요."
  "기럼 일을 보러 가야 할 땐 어떡하디요?"
  "부엌에 하수구 구멍이 있으니까 거기서 일을 봐요."
  "알았시요. 기럼 잘 다녀오시라요."
  옹녀를 혼자 남겨 두고 나가는  게 안심은 되지 않지만 그래도 하는
수 없는 노릇이다.
  옷을 몇  가지 골라 사들고 나서  얼른 발길을 돌리려는데 문득  '내
조수로 와 있는 건 어떨까' 하는 오만불 박사의 말이 떠오른다.
  '이왕 나온 김에  오만불 박사가 하는 일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
고 돌아갈까?'
  나는 서둘러 귀가하려던 생각을 바꾸어 러브타임머신 여행사로 향한
다.
  여행사에는 마침 시간여행을  떠날 손님 한 명이  상투를 틀고 갓을
쓴 이조 선비의 옷차림을 한 채 대기하고  있다. 오만불 박사는 손님을
잠시 기다리게 하고는 다른 방에서 나를 맞는다. 반가운 눈치다.
  "벌써 마음먹었는가 보지요? 결단력이 있어서 좋군요."
  "저어…그게 아니라요…"
  "아니라구? 그럼 무슨 일로 왔을까?"
  "마음을 먹기전에 우선 박사님이 하시는 일을 견학하고 싶어서 들렀
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나와  함께 저 손님의 시간여행을 지켜보도록 합
시다."
  "저 손님은 누굴 만나러 갑니까?"


  "춘향이."
  "그럼 이도령과의 한판이 볼 만하겠군요."
  "이도령보다도 춘향이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박사님, 이제 그만 말씀을 놓으십시오. 저는 더 이상 손님이
아니니까요."
  "모르지 않소. 또 내 손님으로 올는지."
  "옹녀가 있는  이상 절대로 그럴  순 없습니다. 저는  옹녀를 행복한
여인으로 다시 나게 하고 싶어서 현대로 데리고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을 내리도록 할까…"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런데 박사님. 박사님은  저 손님이 춘향이를
자신의 품에 안게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까?"
  "그렇지는 않다고 보아야  하겠지. 춘향이는 결국 이도령의  품에 행
복하게 안기게 되는데 굳이  춘향이가 바람나기를 바랄 이유가 있겠는
가."
  "만약에 저 손님이 춘향이를  유혹하는 데 실패하면 저 손님 입장에
서는 실망이 무척 크겠군요."
  "당연히 그렇겠지. 자, 그럼 따라 들어오게."
  나는 오만불 박사를 따라 다시 타임머신이 있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춘향이를 만나러 가겠다는 손님은 한 마디로  매끈한 미남이었다. 아
직 군대에도 다녀오지  않은 젊은 대학생이지만, 재벌  2세이기 때문에
돈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 어느 상황에 도착을 하고 싶으시오?"
  오만불 박사가 그 재벌 2세에게 묻는다.
  "글쎄요…아무래도 제가  사내대장부이니만큼 춘향이가 옥중에 있을
때 다녀오는 게 마땅하겠죠."
  "그거 좋은 생각이오. 그러니까 이도령보다  먼저 춘향이를 구출하여
춘향이의 마음을 유혹하시겠다  이거로군. 그럼 일단 춘향이가  이도령
을 만나는 상황을 보아두고 떠나는 게 좋겠지요."
  "예. 한시라도 빨리 춘향이의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럼 곧 보여드리겠소."
  오만불 박사가 허리에  차고 있던 리모콘을 빼내  들고 버튼을 누르
자, 내가 손님으로 왔을 때 그랬던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벽면에 화면
이 나타난다.
  밖으로 나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화창한  단오날. 나무숲에
는 새들이  짝을 지어 날아다니며 서로  수작을 부리고 있다. 그  춘정
(春情)을 다투는 새들의 노랫소리에 이끌려 한 사내가 방문을 연다. 이
팔 청춘 16세의  이몽룡이다. 임금에게 충효록을 제대로 올려  남원 부
사에 부임한 이한림의 아들.
  우선 당나라의 시인  두목지를 닮은 풍채부터가 좋다. 도량  또한 푸
른 바다처럼 넓어 보인다. 방바닥에 놓여 있는  그가 써놓은 문장은 이
태백을 뺨치고, 필체 또한 왕희지를 넘볼 듯하다. 어디 내놔도 일등 갈
만한 호남아인 그가 소리쳐 말한다.
  "여봐라, 방자야. 이 고을에  경치 좋은 데가 어디더냐? 따사로운 햇
살에 시흥(詩興)이 도도하니 어서 절경(絶景)을 일러라."
  "글공부 하시는 도령님이 경치를 찾으심은 부질없소이다."
  "그놈 참으로 무식토다. 예로부터 그 고장의 문장 재사가 절승(絶勝)
한 강산을 구경하는 것은  풍월을 읊고 글을 짓는 데 기본이  되는 법.
신선도 두루 돌아 널리 보거늘, 하물며 내게 부당타 하느냐?"
  "그렇담 무식을 면키 위하여 남원 절경을  일러 드리겄소. 동문 밖에
나가면 관왕묘는 천고 영웅 엄한 위풍 어제  오늘 같사옵고, 남문 밖에
나가면 광한루와  오작교, 영주각이 좋사옵고, 북문  밖에 나가면 청천
(靑天)에 금부용꽃이 빼어나  괴팍하게 우뚝 섰으니 기암 둥실  교룡산
성이 좋소."
  "네 말대로라면  광한루와 오작교가 그럴  듯하구나. 더 셈해  볼 것


없이 그리로 가도록 하자꾸나."
  아무래도 이몽룡의 얼굴에 욕정(欲情)이 발동한 표정이 역력하다.
  오만불 박사가 다시 리모콘을 조작하자, 화면은  바뀌어 어느덧 광한
루와 오작교의 절경이 펼쳐진다. 절경에 더하여  배추흰나비 한쌍과 꾀
꼬리 한쌍이 금실지락(琴瑟之樂)을 겨루듯 궁상각치우로 날아든다.
  "드높고 밝은 오작의  배에 옥계단의 광한루로다. 누구냐 천상(天上)
의 직녀는, 흥(興)에 이른 오늘의 내가 견우일진대."
  시 한 수 읊고 술 한 잔 기울이는데,  멀리서 그네 타는 춘향의 모습
이 보인다. 옹녀와는  누가 더 아름다운지 비교할 재주가  없을 지경인
데, 옹녀의 요염함과는 달리 때 묻지 않은 곱기가 각별하다.
  "여봐라, 통인(조선 시대에 지방의  관장 밑에서 잔심부름을 하던 사
람)아. 저  건너 화류 중에  얼른얼른하는 게 누구인지  알아보고 오너
라."
  잠시 후에 통인이 돌아와 말한다.
  "이 고을 기생이던 월매의 딸 춘향이라  하옵니다. 제 어미는 기생이
오나, 춘향이는 도도하여 기생 구실 마다 하고, 또한 시서 음률이 능통
하여 여염집 처자와 다름없소이다."
  "그거 좋다. 훌륭하다."
  이몽룡의 눈빛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오만불 박사가 또다시  리모콘을 조작하자, 상황은 급진전되어  벌써
춘향이와 이몽룡이 한 방에 들었다. 때는 해가 한참 떨어진 시각. 이몽
룡이 월매에게 말한다.
  "광한루에서 우연히 자네 딸을 한 번 보고 내 마음이 이렇듯 취하여
찾아왔네. 오늘  밤에 온 뜻은 자네  딸 춘향이와 백년 언약을  맺고자
함이니 자네 마음은 어떠한가?"
  "부자도 아닌데다 서인(庶人)에도 못 미치니  그런 말씀 마시고 즐기
다가 가십시오."
  "좋은 일엔 본디 마가 끼는 법. 내  뜻이 굳었으니 양반의 자식이 굳
이 일구 이언을 하기는 싫네."
  월매의 얼굴에 내심 기뻐하는 표정이 어른거린다.
  "도령님 뜻이 정히 그러하면 처분대로 하시오."
  월매의 말을 받아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던 춘향이 입을 연다.
  "봉이 나매 황이 나고, 장군 나매 용마 나고, 남원의 춘향 나매 이화
춘풍 꽃답다. 향단아, 술상 준비하였느냐?"
  "예."
  곧 향단이가 술상을 들여오고, 춘향이가 이몽룡에게  공손히 술을 따
라 준다.
  "육례대로 하면 더욱 좋을 것이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그렇게
는 못  하고, 원통스럽게도 이렇듯 개구멍으로  들고 말았구나. 그러나
춘향아, 우리 둘이 대례 술로 알고 먹자꾸나."
  "예."
  "첫째 잔은 인사주요, 둘째 잔은 합환주니, 이 술을 근본으로 삼으리
라. 우리 백세까지 살다가 한날 한시에 마주  누워 차별없이 죽게 되면
천하 제일의 연분이 아니겠느냐."
  그러자 월매가 향단이를 데리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간다. 이제 비로
소 춘향이와 이도령 단둘이만 남았다.
  "치마를 벗도록 해라."
  이몽룡이 성급하다. 하지만  춘향이는 이몽룡의 마음과 달리  부끄러
워 잔뜩 옷고름을  움켜쥐고 있다. 이몽룡은 더 기다리지  못하고 잔뜩
달아오른 손을 춘향이의  옷고름으로 가져간다. 춘향이는 옷  벗겨지는
것이 부끄러워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이몽룡의 완력에 이겨내지 못하고 하나하나 벗겨진
다. 마침내 다리속곳과 고쟁이, 그리고 속곳마저 벗겨지자 춘향이는 어


쩔 줄 모른다. 손을  대면 주르륵 미끌어질 듯 부드럽고 흰  살결을 양
손으로 감추느라고 정신이 없다.
  이몽룡은 한동안 춘향이의 아름다운  알몸에 정신이 나가 있다가 이
윽고 입을 연다.
  "얘, 춘향아. 떨지 말고 이리 와 내 등에 업히어라."
  이몽룡이 뒤돌아 앉자 춘향이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겨우 용기가 났
는지 그의 등뒤로  알몸을 기댄다. 이몽룡은 등뒤로 손을  돌려 춘향이
의 허벅지를 잡는다.
  "어따, 그 계집애 똥집 제법 무겁다."
  춘향이가 부끄러워하며 양손으로 이몽룡의 어깨를 두들긴다.
  "춘향아, 네가 내 등에 업힌 것이 어떠하냐?"
  "…그저 좋소이다."
  "정말 좋으냐?"
  "좋소이다."
  "그럼 잠깐 내렸거라. 나도  옷을 벗고 너를 업자꾸나. 그 대신에 너
도 나를 업어 주어야 한다."
  "…아유, 어린애 같으신 내 도령님."
  춘향이가 다시 이몽룡의  어깨를 두들긴다. 춘향이의 눈웃음과  볼우
물이 예쁘다.
  이제 두 사람의 몸이 뜨거워지는 기색이 보이자 오만불 박사가 리모
콘의 버튼을 눌러 화면을 끈다.
  "저 귀여운  여자가 바로 학생이  만나러 갈 춘향이오.  충분히 보았
소."
  "정말 아름답습니다. 어서 보내 주십시오."
  "그럼 탑승하도록 하시오."
  그 손님이 탑승하고  얼마 후, 오만불 박사의 리모콘  조작에 의하여
타임머신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다시 나타난 타임머신  안에는
탑승했던 손님이 없다.
  그런데 오만불  박사가 다시 리모콘을  조작하자 이번에는 아무것도
없는 벽면에 화면이 나타나고 거기에 그 손님이 들어가 있다.
  "저곳은 어디입니까?"
  "숙종 즉위 초의 남원 관아 감옥 옆일세."
  "이제 서서히 일이 벌어지겠군요."
  "그런데 예상과 달리 의외로 일이 빨리 끝나 버릴지도 모르네."
  "춘향이를 그렇게 빨리  구출하고, 또 그렇게 빨리  바람나게 만든단
말입니까?"
  "글쎄…"
  나는 오만불 박사의 말뜻이 무엇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다.
  나는 화면을 주시한다.  김상속이란 별난 이름을 가진 그  손님은 등
에 멘 바랑  같은 거북이가방 속에서 재빨리 가스총부터  꺼낸다. 아무
래도 속전속결로 처리해 버릴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감옥 앞에 이르
자마자 옥문 앞에 창을 들고 서 있는 포졸 두 명에게 그대로 가스총을
쏘아 기절시켜 버린다. 그러곤 곧장 감옥으로 달려간다.
  감옥 안에는 춘향이가 가느다란 목에 칼을 쓴  채 엎어져 있다. 그런
데 아무리 보아도  아까 본 춘향이의 모습이 아니다.  머리카락은 미친
년 머리처럼 헝클어져 있고, 백옥 같던 얼굴은  퉁퉁 부어 문둥병 환자
처럼 처참하다. 수십  차례 매를 맞아 달덩이같이 곱던  엉덩이도 형편
없이 찢겨져 있다.
  "음…이게 아니었군."
  김상속은 중얼거리더니 곧 거북이가방에서 호출기를 누른다.
  "저것 보라구. 생각이 곧 바뀌었잖은가. 저 친구는 춘향이의 저런 모
습을 원하지는 않았던  거야. 춘향이를 진심으로 구출해 주고  싶은 마
음이 있다면 저럴 리가 없지. 저 친구는  단지 춘향이의 미모만을 탐하
고 싶었던 거야. 그것이 자네와 다른 점일세."


  오만불 박사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허리에 차고 있던 리모콘을 빼내
어 다시  조작한다. 그러자 실내에  있던 타임머신이 사라졌다가  얼마
후에 다시 나타난다. 문이 열리고 타임머신 안에서 김상속이 내려온다.
잔뜩 풀이 죽어 있는 표정이다.
  "박사님. 아무래도 다른 상황으로 가야 하겠습니다."
  "선불이오."
  "드리겠습니다."
  김상속은 지갑을 꺼내어 빳빳한 수표로 곧 대금을  치른다. 1천 만원
을 또다시 없애면서도 조금도 아까워하는 표정이 아니다.
  "그럼 이번엔 어떤 상황이 좋겠소?"
  "춘향이와 이도령이 작별하는 상황이 좋겠습니다."
  "알았소. 다시 탑승하시오."
  김상속이 탑승하자 곧 오만불  박사는 리모콘을 조작하여 그를 숙종
즉위초의 시대로 보내  버린다. 벽면에는 조금 전처럼 다시  화면이 나
타난다. 춘향이와 이도령이 만나고 있는 장면이다.
  이몽룡이 울고 서 있자 춘향이가 묻는다.
  "애고, 이게 웬일이오? 사또께 불려가시더니  꾸중만 들으셨소? 서울
서 무슨  기별 왔다더니 재앙을 입으셨소?  점잖으신 도령님이 눈물이
웬일이오? 우지 마오, 우지 마오."
  춘향이 치맛자락을 걷어 잡고  이몽룡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콕콕
찍어내며 달랜다.
  하지만 눈물이란 게 말리는 이 있으면 더  나오는 법이다. 그러자 답
답한 춘향이 화를 낸다.
  "여보, 도령님. 우는  입 진짜 보기싫소. 그만 울고  내력이나 말하시
오."
  "사또께서 동부승지로 승차하시었구나."
  춘향의 입이 활짝 개인다.
  "그렇담 댁의 경사 아니오. 그런데 왜 운단 말이오?"
  "춘향아, 내 너를 버리고 가야만 하니 어찌 답답하지 않겠느냐."
  "언제는 남원땅에서 백년을 사실 줄 아셨소? 도령님 따라 나도 추후
에 올라갈 것이니 괜한 걱정 마시오."
  "그런 법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네 말을  대부인에게 여쭈었더
니 꾸중이 많으시다.  양반의 자식이 부친을 따라  내려왔다가 화방(花
房)에 들어 첩을 꾸려 간다 하면 앞으로 벼슬도 막막하단 말씀이다. 그
러하니 이별밖에 수가 없다."
  "어허, 그게 웬말이오?"
  춘향이 화를 벌컥 내며 자신의 치맛자락을 북북 찢어내고 고운 머리
칼을 한 움큼 뽑아내어 이몽룡의 안면에다 던진다.
  "무엇이 어쩌고 어째요? 지금  하신 말이 참말이오? 우리 둘이 만나
백년 언약 맺은 것이  사또나 대부인께서 시키신 일인가요? 하물며 벼
슬 핑계가 웬말이오?  이렇듯 갑자기 날 버리시니, 이팔 청춘  젊은 것
이 앞으로 낭군 없이 어찌 살꼬? 여보 도령님,  춘향 몸이 천하다고 함
부로 버리셔도 그만인 줄로 아지  마소. 애고 애고 내 신세야, 죽고 싶
다, 죽고 싶다. 사람 대접 그리 마오, 애고 애고 서럽다."
  춘향이 곡을 하자 이몽룡이 춘향이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달랜다.
  "춘향아 우지 마라. 한양성 남북촌에 옥 같은 여자가 쌨건만은, 규중
심처 깊은 정 너밖에 없었다. 내 어찌  대장부라 한들 한시라도 잊겠느
냐?"
  그때 후행 사령이 헐레벌떡 달려와 다급하게 외친다.
  "도령님, 어서 행차하옵소서."
  상황이 다급해지자 춘향이가 향단이에게 급히 술상을 마당으로 내오
라 한다. 향단이가 술상을 내오자 춘향이는 술  한 잔에 자신의 눈물을
섞어 이몽룡에게 건넨다.
  "한양성 가시는 길에 강가에 늘어선  푸른 초목(草木)들은 제 작별의


서러움을 머금었으니 부디 제 정을 생각하소."
  그 동안 김상속은 풀숲에 숨어 상황을 계속해서 엿보고 있다.
  어느덧 밤이 왔다. 그런데  촛불을 돋워 켜고 홀로 앉아 잠  못 자는
춘향이의 그림자가
서럽다. 이몽룡의 품이 없는  밤이 너무도 궁색한 것이다. 춘향이는 한
참을 앉아 있다가  멍청한 눈빛으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다. 그리고 마당에  우두커니 서서 검은 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하나둘
세더니 다시 방안으로  들어간다. 그 틈에 춘향이의 동정을  살피던 김
상속은 이미 춘향이의 방안에 숨어들어 병풍 뒤에 숨은 상태.
  그런데 춘향이가 웬일인지  아까 이몽룡에게 따라 주고  남은 술 한
병을 안주 한 점 먹지 않고 다 비우더니 옷을 한 꺼풀 두꺼풀 벗기 시
작한다. 마침내 속곳마저 다 벗어버리자 자신의  한손을 가슴으로 가져
가고 다른 한손을  은밀한 부위로 가져간다. 그러고는 아주  옅은 신음
소리와 더불어 자위행위를 시작한다. 이몽룡과의 꿈결  같은 정사를 헤
어진 뒤 하루가 채  못 지났는데도 못 잊는 것이다. 한번  맛을 들이면
못 견딘다는 게 남녀의 성심리라던가.
  눈을 감고 입을 벌리는데 그 안에서 고운  혀가 기어나온다. 술에 취
한데다 자신을 희롱함에 취해선지 제정신이 아닌 듯하다.
  그때 병풍 뒤에서 김상속이 기어나와 그녀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말
한다.
  "소리치지 말아요. 난 소녀의 외로움을 달래주러 온 선비니까."
  "하, 하지만…"
  "미안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소녀의 입에 재갈을 물리겠소."
  그러고서 김상속은 재빨리 춘향이의 입에 재갈을 물린다.
  "불을 끄겠소. 소녀는 가만히 있으면 되오.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거
요."
  김상속은 촛불을 끄고서 춘향이의 몸을 더듬어 가며 입술과 혀를 이
용한 애무를 시작한다. 감촉의 뜨거움에 춘향이의  몸이 좌우로 진저리
를 치기  시작한다. 이몽룡의 애무보다  더 뜨거웠으면 뜨거웠지  못할
것이 없다. 아니,  이몽룡의 애무는 감히 비할 바가 못  된다. 이몽룡은
고작해야 춘향이가 첫경험이요, 김상속은 그 동안  돈을 미끼삼아 현대
의 성개방 미녀들 수십 명 울려놓은 몹쓸 전력(前歷)이 있지 않겠는가.
  그때 문밖에서 불쑥 월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춘향아, 자는가?"
  <다음달에는 제3화 '심청이가  기가막혀'가 이어집니다. 춘향이와 김
상속과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 것인지,  그리고 심청이를 만나
러 가는 손님은 누구이며 심청이와 그 손님과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
질 것인지 기대하십시오. 또  화자(話者)인 나는 옹녀와의 동거 살림을
앞으로 잘 꾸려나갈 것인지 살펴봐 주십시오.>


제  목 : 김선영 신세대 패러디 소설 : 제 3화 심청이가 기가막혀
  춘향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는  모양이
다. 몸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반항을 해서라도 자신이 이름모를
괴한에게 겁탈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인 월매에게  알리는 것
이 열녀(烈女)의 도리이겠지만, 사실 그녀의 눈은 이미  이몽룡을 뛰어
넘는 김상속의 뜨거운 애무에 의해서  거의 풀려져 있는 상태가  아닌
가. 그녀의 마음이야 어떻든 분명히 위험  천만한 상황이기 때문에 김
상속은 춘향의 몸을 덮은 채 숨을 죽이고 엎드려 있다.
  "야가 서러워 울더니, 지쳐서 잠이 든 모양인가?"
  월매는 혼잣말을 하고 나서 돌아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돌아서서 문
을 연다. 김상속은 숨이 콱 막힐  노릇이겠지만 용하게도 참아내고 있
다.
  "잠자리가 편한가 봐두고 가야겄네."
  어두운 방안으로 들어선 월매는 이상한 느낌이 전해져  오는지 코를
흠흠거린다.
  "이게 필경 남정네 냄새인디…"
  온갖 남정네 냄새 다 맡아 본  소문난 퇴기(退妓) 월매가 눈치를 채
지 못할 리 없다. 월매는 도로 밖으로 나가 문을 닫고 나서 묻는다.
  "혹시 이도령이 돌아왔소?"
  몇 초쯤 흐른 뒤에 문 안에서 대답이 흘러나온다.
  "그렇소, 장모. 내가 몸이 달아서 하루를 못 견디고 이렇게 되돌아왔
소."
  김상속의 목소리가 분명한데, 제법 이몽룡의 목소리를 흉내내었다.
  "그런데 어째 목소리가 쉰 것 같으요?"
  "장안 가던 길에 마음이 울적하여 곡을 좀 했더니 목이 쉬어버렸소."
  "저런! 이야길 듣고 보니 내 마음이 더 아프요. 그래 언제 돌아갈 셈
이요?"
  "내일 가리다. 내일 아침에 인사 여쭙고 가리다."
  "그럼 불쌍한 우리 춘향일 하루라도 더 잘 품어 주오."
  속아넘어간 월매가 치맛자락을  걷어올려 눈물을  훔치며 돌아간다.
이윽고 월매의 발걸음 소리가 어둠속에 완전히 파묻혀  버리자 김상속
은 다시 춘향이의 살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김상속의 혀는 뱀의 혀처
럼 정말 능란하게 이동하며 움직인다. 춘향이의 몸은 김상속의 부드러
운 혀가 닿는 곳마다 뒤틀린다. 멈추지  않았으면 싶은 절묘한 간지러
움일 것이다. 여자의 몸은 그 느낌이 오래 가면 오르가슴에 이르는 법.
김상속의 혀가 춘향이의 왼쪽 배를 타고내려가 비로소  그녀의 은밀한
부위에 이르자 춘향이는 비로소 정조(貞操)를 포기하기로 작심한 모양
이다. 양팔을 벌리고 김상속의 남성이 들어오기를 갈구하는 것이다.
  김상속은 재빨리 춘향이의  뜻을 알아채고 얼굴을  든다. 그러고 곧
춘향이의 귓가로 입을 가져가 잔잔하게 말한다.
  "재갈을 풀어줄테니 소리치지 않겠소?"
  춘향이는 알았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인다.
  "믿고 풀어주리다."
  김상속은 더 이상 의심하지 않을 작정인지 별  망설임없이 춘향이의
입을 포박했던 재갈을 풀어준다.
  "참말 고맙소."
  춘향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일으킨다.
  "이번엔 도령님이 누우시오."
  이왕 벌어진 일, 춘향이는 아예 한밤중의 침입자인 김상속을 이몽룡
으로 생각하기로 작심한 모양이다. 하기야, 혼인도 올리지  않은 채 이
몽룡의 말만 덜컥 믿고  이미 처녀성을 잃은 몸이  아닌가. 구렁이 한
마리가 지나간 풀숲에 다른 구렁이 한 마리가 더 지나갔다고  하여 큰
길이 날 리는 만무하다.
  춘향이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들었는지, 김상속은 곧 회심(會心)


의 미소를 머금고 길게 눕는다. 그러자  춘향이가 김상속의 옷을 하나
하나 벗겨낸다.
  "참말 잘생겼소."
  털이 수북한 가슴이 드러나자 춘향이 감탄의 표현을 숨기지 않는다.
이몽룡이 그리워 마스터베이션을 한 전과가 있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
렇더라도 춘향이는 어쩌자고 저러는 걸까?
  이윽고 김상속의 아랫도리마저 벗겨낸 춘향이는, 10여 초쯤 그의 몸
을 관찰하다가 거슴츠레해진 눈빛으로 달려든다. 그녀의 혀는 붉고 윤
기가 날 정도로 잔뜩 발기되어 있다.
  춘향이는 김상속이 자기에게 했던 대로 김상속의 몸을  입술과 혀로
애무하고, 김상속은 육체의 자극에 견딜 수  없는지 몸을 뒤틀기 시작
한다.
  춘향이는 김상속의 클라이맥스 부위에서 한동안 머물러 있다가 입을
떼고 상체를 들어 앉는다. 그러곤 곧 여성 상위 체위에 들어간다. 춘향
이는 김상속의 배를 깔고 엎드린  자세에서 자신의 몸을 일으켜  발을
끌어올리고 무릎을 굽힌다.  춘향이는 자신의 팔과  무릎에 체중을 잘
싣고 있는지 김상속의 표정이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춘향이의
가냘픈 몸매에서 체중이래야 얼마나 나가겠으며,  또한 저만한 미인의
알몸이 올라와 있는데 힘겨워할 표정을 지을 남정네가  지구상 어디에
있겠는가. 물론 성불구자라면 사정이 다르겠지만.
  춘향이는 양 손바닥으로 김상속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애무하기 시작
한다. 또는 김상속 쪽으로 상체를 기울여 키스를 퍼붓기도  한다. 그러
면서 자신의 둔부를 위아래로 격렬하게 움직이거나 좌우로 움직이기도
하고 돌리기까지 하는 것이다. 김상속은 편안히 누운 자세에서 춘향이
의 은밀한 부위와 자신의 은밀한 부위가 접촉된 것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다. 김상속의 손 역시  점잖게 있지는 못한다. 춘향이의  젖가슴에서
배를 타고 은밀한 부위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타고  올라가는 쓰다듬기
를 거듭한다.
  "저것이 소위 걸터앉아 사랑하는 아스트라이드(Astride) 체위일세."
  그때 불쑥 오만불 박사가 말한다.
  "저럴 때 여성은 말을 타는 듯한 쾌감에 젖곤 하지. 왜 있지 않은가,
애마부인이 새벽 안개 속에서 알몸인 채 말을 타고 달려가는  영화 속
의 한 장면 같은 것…"
  "승마를 잘 하는 여성은 저 체위에 능하겠군요."
  "아무래도 그렇다고 봐야겠지. 뭐든지  익숙해지면 자유로워지는 법
이니까."
  나 역시 과거에 사창가에서 조교 아르바이트를 할 적에 창녀들을 상
대로 저런 식의 체위를 수없이 경험해 보았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남
자 쪽에서 걸터앉아 실행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저 체위는 역시 여성 페이스야.  절정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리드해
나간다네. 실제 삽입은 하지 않지만  터키배스탕의 마사지걸들이 많이
애용하는 수단이야."
  나는 터키배스탕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사창가에도 저처럼 능란한 아
스트라이드 체위를 연출하는 여자들이 더러 있었다.
  "그런데 박사님. 춘향이가 어째 저럴 수가 있을까요?"
  "한번 남자 맛을 알고 나면 저리 달라지는 게 야한 여자의 속성이라
네."
  "춘향이가 M교수의 이론에 부합하는 야한 여자인가요?"
  "그렇지 않음 이몽룡이 왜 홀렸겠는가? 냄새를 흘렸으니까 홀렸지."
  "아, 드디어 결판났군요."
  "음…"
  나와 오만불 박사는 다시 화면에 눈을 준다.
  제법 오래 몸이 부서지도록 껴안고 있던  두 사람은, 뒤풀이마저 끝


냈는지 마침내 떨어진다.
  "그런데 도령님은 누구시요?"
  춘향이가 양팔로 가슴을 감싸쥔 채 묻는다.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난 서기  1996년의 남자요. 당신보다
수백년 뒤의 사람이라면 믿을 수가 있겠소?"
  "그런 일이 세상에 어찌 가당탄 말이요? 놀리지 마시고 진실을 밝히
시어요."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겠소."
  김상속은 이조 중엽부터 1996년에 이르기까지의 과학 문명의 발달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리고 자신이 타임머신을  타고 춘향이를 만나러
오게 된 동기도  설명한다. 더불어 앞으로  춘향이에게 닥쳐올 그녀의
인생도 설명해 준다.
  "1996년의 남원에서는 당신의 굳은 절개를 기리는 춘향제가 매년 열
리고 있소. 미스 춘향도 뽑고 말이오.  진선미 정숙현, 이렇게 여섯 명
씩이나. 미스 향단이도 더불어 뽑고 있죠."
  "하지만 전 이미 정조를 버렸는 걸요."
  "나와 한 번 관계했다고 해서 정조를 버렸다는  무슨 표시라도 납니
까?"
  "그래도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난 이렇게 생각해요. 춘향이 당신이 굳이  여기 남아 있다간 곧 부
임해 올 변학도에게 수청을 들라는 분부를 받게 될 테고, 수청을 들지
않겠다고 버티다간 죽을 고초를 치러야 하는데,  굳이 사서 고생을 할
필요가 있겠느냔 말이오. 그리고 또 봅시다. 당신이 이도령의 도움으로
구출되고 한양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앞으로의 행복이 가능하다고 생각
하시오. 기껏해야 첩으로 들면 다행이지. 어때요? 나랑  1996년의 한양
으로 가지 않으려오?"
  춘향이는 곰곰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연다.
  "하지만 저에게는 딸 하나 키우는 재미를 낙으로  여기며 살아온 어
머니가 계시요."
  "그런 건 걱정 마오. 내가 다 데려가리다. 향단이까지 말이오."
  "참말 가능탄 말이요?"
  "염려할 것 없소. 다만 설득하기가 어려울 테니 그게 고민이오."
  "염려마시어요. 제가 어머니를 설득하겠어요. 도령님, 이만 주무시지
요. 내일 날이 새면 필시 좋은 대답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내일을 기약하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겠군요. 나에게는
안전이 제일이니까 우리 이렇게 합시다. 내일 정오에, 당신이 이도령을
배웅해 주었던 장소에서 둘이 만나는 걸로. 아니, 둘이 아니라 넷이 만
나야겠군. 당신의 어머니와 향단이까지 말이오."
  "알겠소, 도령님."
  김상속은 춘향이에게 입을 한번 맞추어 주고서 방문을 열고 나간다.
짚신을 신고 걷는데 무엇인가가 후다닥 달아나 풀숲에 숨는다. 김상속
은 "누구냐?" 하고 소리지를 수도 없는 처지여서  무척이나 답답한 표
정이다.
  김상속은 등에 멘 거북이가방에서 재빨리 가스총을 뽑아들고 풀숲을
향해 다가간다. 있다. 풀숲에 누군가가 숨어 있다. 달빛에 드러나는 얼
굴이, 향단이다.
  김상속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가스총을 쏘아 버린다. 그리고 쓰
러져 의식을 잃은 향단이를 집에서  좀더 떨어진 풀숲으로 엎어  메고
간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또 일을 벌인다. 향단이의 옷을 벗겨
놓고 입으로 전신 애무를 해나가는 것이다. 향단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1996년의 오렌지족과 야타족의  하나인 김상속에게 서서히  함락을
당하고 있다.
  "저런 죽일놈!"
  오만불 박사가 더 이상 눈 뜨고 보지 못하겠는지 버럭  소리를 내지


른다.
  "춘향이와 향단이가 모두모두  불쌍하군. 이제  곧 월매도 불쌍해질
가능성이 많겠어."
  오만불 박사는 혀를 끌끌 찬다.
  "저것 봐, 저것 보라구! 벌써 일을 벌이기 시작했어. 아무튼 돈만 많
으면 제멋대로인 세상이라니까. 제놈이 번 돈도 아니면서 말이야."
  의식을 잃은 향단이를 겁탈한 김상속은, 향단이를 알몸인 채 그대로
풀숲에 내버려 두고 춘향이의 방을 향해 몸을 움직인다. 방문 앞에 다
가서자 짐짓 점잖을 빼고 말한다.
  "춘향 낭자. 할 말이 있어 또 왔소."
  아직 잠들지 않았는지 곧 문이 열린다.
  "여기서 주무시기로 생각이 바뀌었소?"
  춘향이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묻는다. 그러자 김상속은 인정머리없게
등뒤에 감추어 두었던 가스총을 앞으로 쑥 빼내어 방아쇠를 당긴다.
  "아!"
  춘향이는 비명을 지르고 고통스러워하며 방바닥에 쓰러진다. 김상속
은 지체하지 않고 아직 식지 않은 알몸인 춘향이를 엎어 멘 채 자신이
도착했던 장소로 달려간다. 그리고 타임머신 도착 지점에 다다르자, 등
에 멘 거북이가방에서 호출기를 빼내어 버튼을 누른다.
  "저거 보게. 춘향이를 강제로 업어 오려는 거야. 저건 자네의 경우와
다르지. 자네는 옹녀의 승낙을 받은데다, 옹녀는 그  시대에 불행이 예
견되어 있는 홀몸이기에 이해할 수 있었던 거야. 하지만 저 친구는 너
무하군. 하는 수 없지. 나도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니까. 다만 앞으로 춘
향이가 행복해지기만 바랄 뿐이야."
  "춘향이는 그렇다 하고, 알몸인 채 풀숲에서  깨어날 향단이와, 사랑
하는 여식을 실종하고 찾아 헤맬 월매가 불쌍하군요."
  "음…"
  오만불 박사는 신음을 흘리다가  리모콘을 눌러 타임머신을  작동한
다. 그러자 실내에 있던 타임머신이 사라졌다가  얼마 후에 다시 나타
난다. 문이 열리고  타임머신 안에서 김상속이  알몸인 춘향이를 안아
들고 내려온다. 몹시 의기양양한 표정이다.
  "고맙습니다. 박사님 덕분에 제가 이런 미인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젠 가정을 꾸리고 새 삶을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김상속의 말을 듣는 오만불 박사의 얼굴은 믿거나 말거나 하는 표정
이다.
  "그건 그렇고…춘향 낭자를 그렇게  알몸인 채로 데리고  나갈 건가
요? 당신 자가용에 태울 테니 의식을 잃은 거야 상관이 없을 테지만."
  "아차, 그렇군요. 뭐 입힐 거라도 없나요?"
  "팬티부터 겉옷까지 다 준비되어 있기는 하지만…"
  확실히 오만불 박사는 돈벌이 계산에 치밀하다.
  "그렇다면 섭섭치 않게 드리겠습니다. 한 장이면 되겠습니까?"
  잠시 춘향이를 맡겨 두고 나가서  옷을 사오면 될 텐데도  김상속은
몹시 서두른다.
  "음…"
  "그럼 두 장이면 되겠습니까."
  오만불 박사는 많이 봐준다는 표정을 짓고서 김상속이 내민 1천만원
권 자기앞수표 두 장을 받아든다. 곧 그 수표를 지갑에 잘 챙겨넣고는
리모콘의 버튼을 조작하자, 갑자기 어디선가 여성  의류 한 세트가 툭
하고 김상속의 발 아래로 떨어진다. 김상속은 핑크빛 팬티부터 시작해
서 춘향이에게 옷을 하나하나 입혀 주고는 이내 작별을 고한다.
  "다른 메뉴가 생각나면 또 오겠습니다."
  러브타임머신 여행사에서 김상속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자 오만불 박
사가 중얼거린다.


  "미친 놈!"
  "아무래도 춘향이가 불행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요."
  "저놈은 특별 관리를 해야겠어. 어때, 내가 하는 일이 그다지 쉽지만
은 않지?"
  "그런 셈이군요."
  그때 차임벨이 울린다.
  "벌써 예약 손님이 올 시간이 됐군."
  "이번엔 누굴 선택할까요? 옹녀와 춘향이를 선택할 수도 있겠지요?"
  "미안한 일이지만 한  번 선택받은  여자는 차림표에서 제외된다네.
나도 그 정도 양식은 있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이번 손님은 아예 누구
라고까지 점찍어 놓고 예약을 했어."
  "그럼 옹녀와 춘향이가 아닌 누굴까요?"
  "청일세."
  "청이요?"
  "심청이."
  "조금 뜻밖이로군요."
  "그렇지도 않네."
  "섹스 심벌이 아닌데두요."
  "섹스 심벌은 아니지만 참한 미모에 빼어난 인성(人性)을 지니지 않
았는가. 더욱이 인당수에 몸을 바친 뒤에  왕비로 다시 태어나고 말이
야. 그만큼 잘생긴 여자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음…그건 그렇군요."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어온다.  건장한 몸집의 사내인데 아
무래도 특수부대 출신 같다. 그의 한쪽  어깨에는 커다란 가방이 들러
메어져 있다.
  "안녕하십니까, 박사님. 제가 백국남이라고 합니다."
  "오, 안녕하시오. 그런데 웬 짐을 그렇게 많이?"
  "스킨스쿠버 다이버 장빕니다. 인당수에  들어가 심청이를 구출해야
죠."
  "만일에 당신이 심청이를 구해내게 되면 심청이가 황후 되기도 글렀
고 심봉사가 부원군 되기도 글렀군."
  "제가 더 행복하게 해주면 되지 않습니까?"
  "뜻은 좋소만…인당수가 물살이 매우 험한 곳인데  구출이 가능할까
요?"
  "박사님. 부딪쳐 보지도 않고 피하면 어찌 사내대장부라 하리오."
  "그럼 어느 상황으로 모셔다 드리리까?"
  "당연히 심청이가 인당수에 뛰어들었을 때이지요. 하지만 우선 심청
이의 고된 인생사를 좀 살펴보고 싶습니다."
  "음…그렇다면 화면에 잡기엔 너무  오래 걸릴 설명  부분이 있으니
들어 보시오. 심청이의  부친 심학규는 본디  대대로 벼슬이 번창하여
내려오던 거가대족(巨家大族)의 자손이었소. 그런데 어려서 가운(家運)
이 기울어 가난해진데다 눈마저 멀어버렸지요.  그렇다고 도와주는 일
가친척 하나 없다 보니 기울어진  가세(家勢)에 볕이 들 날이  없었소.
하지만 심학규는 양반의 후손으로서 행실이 청렴하고 정직한데다 지조
와 기개가 고상하여 행동 하나하나가 경솔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동네
사람 누구나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었소. 더욱이 그의 부인 곽씨는 덕
과 아름다움과 절개를 두루 갖춘데다, 예서(禮書)와 시경(詩經) 가운데
본받을 대목이라곤 모르는 게 없었소. 게다가 그녀는 1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품팔이를 했소. 삯바느질이 끝나면 삯빨래를 하고, 삯빨래가
끝나면 삯길쌈을 하고, 삯길쌈이 끝나면 삯마전을 하고, 삯마전이 끝나
면 염색일을 하고, 염색일이 끝나면 혼례집이나  초상집에 가 음식 만
들기와 술 빚기와 떡 찧기를 하고.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한 가지 흠이 있었소. 자식이 없는 거지 뭐요.
이쯤에서 실제 상황을 한번 보십시다."
  오만불 박사는 늘 그랬듯이 벽면을 향하여 리모콘을  내밀고 버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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